율원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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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0월 22일]] 세조의 왕명으로 민발(閔發), 박수장(朴壽長) 등과 함께 [[평안도]](平安道)에 가서 오랑캐를 정벌하는 [[한명회]]를 지원하고, [[한명회]]의 휘하로 출정하라는 명을 받고 [[10월 25일]] 행 첨지중추원사(行僉知中樞院事) 민발, 행 호군(行護軍) 조계종(趙繼宗), 행 대호군(行大護軍) 박수장 등과 함께 군관(軍官) 1, 2인을 거느리고 [[평안도]]로 가 [[여진족]]과 교전하였다.
 
[[1466년]](세조 12) 율원도정(栗元都正), [[1467년]] 율원정으로 강작되었다가 이 해 [[5월]] 장용대장(壯勇隊將)에 임명되고, [[7월 2일]] 율원도정으로 총통도장(銃筒都將)에 겸임되었다. 같은 날 세조의 명으로 귀성군 이준, [[강순]] 등과 함께 여진족 토벌에 출정하였다. 7월 17일에는 각 군별 임무를 편성할 때 총통군(銃筒軍) 6백 명을 거느리고 여진족을 공격하여 격퇴했다. [[8월 20일]] 회군하여 도총사 이하 장수들을 포상할 때 채단(綵段) 2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467년]](세조 13) [[9월 3일]] 남도 절도사(南道節度使), 그해 9월 20일 도총사 귀성군 이하 관원들을 포상할 때, 삼등 공신(三等功臣)으로 녹훈되고, 공신호(號)는 적개 공신(敵愾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전토(田土)와 노비[臧獲]를 하사받고 작위가 군으로 승작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원당리 왕릉골 곤좌(坤坐)에 있으며, 부인 무안현부인 동래정씨와 쌍분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