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신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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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 (토론 | 기여)
언약에 대한 일반적 오해를 바로잡음. 모든 언약은 인격적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저로 하기에 쌍방적인 것이며 신약의 의무 사항인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적인 계명이 새 언약 백성의 의무 조항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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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의무: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이행했음을 받아들인다.
** 하나님의 의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그리스도의 공로를 그들의 것으로 여겨신다.
사실 위의 '구속의 언약'이 체결될 때 이미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냐'하는 것은 정해졌다.<ref name="ephisians">"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4:5)</ref> 이것은 [[예정론]]과도 모순 없이 일관 된다. 은혜의 언약과 행위의 언약의 차이는 그 내용 뿐만 아니라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는 이 은혜의 언약이 파기될 가능성이 없다는 데에도 있다.<ref name="jeremiah">"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예레미아 31:31-33)</ref>
 
사실 위의 '구속의 언약'이 체결될 때 이미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냐'하는 것은 정해졌다.<ref name="ephisians">"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4:5)</ref> 이것은 [[예정론]]과도 모순 없이 일관 된다. 은혜의 언약과 행위의 언약의 차이는 그 내용 뿐만 아니라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는 이 은혜의 언약이 파기될 가능성이 없다는 데에도 있다.<ref name="jeremiah">"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예레미아 31:31-33)</ref>
== 각주 ==
 
<references/>
이상은 개혁주의 조직신학적 견해의 전형이다.
 
그러나 성경적 언약관은 재고찰되어야 한다.
 
# 언약의 근원
 
언약은 성경에서만 특별히 쓰이는 말이 아니다. 일반 사회적으로 쓰이는 계약과 같은 말이다. 모든 인격적 관계에는 계약이 존재한다. 윗글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제정 시행하신다는 면에서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별된 말을 쓸 뿐이다. 언약의 근원은 인간의 본질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로 인하여 존재하게 된다.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지상 피조물의 대표로 지정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인 것과 같이 인간은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계약적이다. 늘 선택과 결과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은 피조된 후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들어간다(호세아 6:7).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모든 신자나 성경의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나 신약시대 그리스도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 존재가 본질적으로 계약적이라는 것이다.
 
2. 언약의 동질성
 
흔한 오해는 인간 본질과 창조의 목적으로 인해 존재론적으로 언약적이라는 것은 간과한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언약은 아담으로부터 요한계시록의 천년왕국을 끝으로 천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격적 관계의 기저이다. 성경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이라는 두 언약을 말한다. 두 계약의 기본은 같다. 계약 당사자, 계약서 작성자가 같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 백성,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다. 계약 성립과 시행은 계약 백성을 택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역사이다. 단지 그 관계의 중요성과 계약의 특성상 구약은 짐승의 피로 신약은 그 아들의 피로 그 언약 성립을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존재의 근본이시다. 물론 그 백성의 생명의 근본이시다. 그러므로 창조주를 떠나는 것이 사망이다. 그러므로 언약은 생명의 피로 맺는 것이다. 신구약 공히 생명의 하나님께의 배약은 죽음만을 가져온다.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의가 없이는 불가하다. 그러므로 구약은 메시아, 신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죄사함을 받아야 그 백성이 될 수 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느니라!"(사도행전 4:12)라고 외친 베드로의 설교는 진리이다. 구세주를 믿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런 면에서 행위 언약 은혜 언약 운운하는 것은 깊지 못한 언사이다. 처음 아담은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으로 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신약은 오신 메시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거기에 언약이 있는 것이다. 아담과 옛 이스라엘은 첫 언약 즉 옛 언약 백성이다. 언약 차원이 같기 때문이다. 둘 다 육체적 차원의 계약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아담을 창조하신 것이나 타락후 메시야의 옛 백성에게나 신약 백성에게나 그 창조 및 구속의 목적이 동일하다(엡 2:10, 딛 2:14, 마 5:13-16). 그 언약의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요 축복과 생명이 따르는 것이다. 에베소서 1:4~5절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선택은 거룩한 백성, 흠없는 백성을 얻는 것이 그 옛 창조와 새 창조의 동일한 목적이다. 그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다.
 
3. 신구 언약의 차이
 
신구약의 차이는 흔히 알고 있는 예레미야 31:31-33에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유명한 성구처럼 오해되는 성구도 없다. 계약이란 항상 의무조건과 권리약속조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성경 계시의 특성상 시대 상황마다 필요한 부분이 강조되고 나머지 부분은 기정 사실로 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이 새 언약에 대한 예언도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에스겔 36:26~28절 정도는 같이 읽어야 오해를 덜 수 있다. 계약서상의 의무 조항의 범주 차원이 겉 사람 차원에서 속 사람 차원까지, 즉 마음에까지 심화확대된 것이다. 새 계약의 의무 조건인 계명들은 산상수훈과 신약성경에서 보듯이 구약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하나님 백성의 의무조항이 육체적 차원에서 영적 차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 특성으로 인해 하나님은 여전히 육체를 입고 있는 언약 백성을 위해 구약과는 달리 성령을 주셔서 그 계약 즉 그 법을 실행할 수 있도록 새 언약을 보증해 주시는 것이 또 다른 신약의 특성이다.
 
(겔 36:26-28)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각주<references group="(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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