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파흐드 주바일 산업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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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l_jubail.jpg|thumb|right|300px|주바일 시의 위성사진. 1996년.]]
[[파일:Jubail, Saudi Arabia locator map.png|thumb|right|300px|주바일 시의 위치]]
'''킹 파흐드 주바일 항만공사산업항'''(الجبيل 港灣工事)는 [[1976년사우디아라비아]] [[현대건설주바일]] 수주한위치한 산업항이다. [[사우디아라비아1976년]] [[주바일현대건설]] 산업항 건설공사를 말한다.수주하였으며, [[현대건설]]에서 [[현대그룹]]이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공사이다되었다.
 
== 공사 개요과정 ==
수심 10m의 바다를 길이 8km, 폭 2km로 매립해 항구와 기반시설을 만드는 공사로, 300 미터 높이의 산 하나를 바다에 메우는 분량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국가예산의 30% 액수인 9억 3000만 달러의 공사로서, 한국 역사상 최대의 공사였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공사였다.
50만 톤급 [[유조선]]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항만 공사로, 3,500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투입되었다. 이 공사의 수주에 큰 기여를 한 [[이명박]] 부사장은 1년 뒤인 1977년 현대건설 사장으로 승진한다.
당시 [[대한민국]] 국가예산의 30% 액수인 9억 3000만 달러의 공사로서, 한국 역사상 최대의 공사였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공사였다.
50만 톤급 [[유조선]]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항만 공사로, 3,500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투입되었다.
이 공사의 수주에 큰 기여를 한 [[이명박]] 부사장은 1년 뒤인 1977년 현대건설 사장으로 승진한다.
 
=== 한국인 노동자들의 데모와 진압 ===
[[1977년]] [[3월]]과 [[1979년]] [[8월]] 두 차례, 공사 현장에서 열악한 근로 조건 때문에 한국인 노동자들의 데모가 발생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해외 근로자에 대한 저임금 등 열악한 근로 조건을 제공했다고 한다. 참다못한 근로자들이 중장비를 몰고 와서 사무실을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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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분류:건설사우디아라비아의 기업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