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 (176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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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李鈺, [[1760년]] - [[1813년]] [[6월 5일]])은 [[조선]] 후기의 시인이자 문인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이다. 자는자(字)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이다문무자(文無子)이다. [[효령대군]]의 후손이었으나 서얼이었다. [[경기도]] [[화성군]] 출신.
 
[[한성]]으로 올라가 [[성균관]]의 유생이 되고, 유생 재학 중 [[1790년]](정조 25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조선 정조|정조]]의 문체반정으로 [[과거 시험]]을 단념하고 낙향하여 [[남양]]에서 은둔하며 시문과 학문으로 소일하였다. [[발해고]]의 저자 [[실학]]자 [[유득공]]의 이종 사촌 형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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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계는 여유가 있어 장서를 소지했고, 종을 몇명 두어 어장을 운영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이종사촌 [[유득공]]을 통해 [[청나라]]의 서적을 구해서 읽기도 했다. 젊어서 [[한성]]으로 올라가 [[성균관]]의 유생이 되었고, 성균관 유생 재학 중이던 [[1790년]](정조 25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생원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 정조|정조]]의 문체반정으로 [[과거 시험]]을 단념하고 낙향, 충군을 청하는 상소까지 있었지만 충군에 대한 청원은 하지 않고 낙향했다. [[1798년]] 봄 [[경상도]] [[삼가현]]의 요청으로 내려가 [[1801년]](순조 1) [[2월]]에 귀향했다.
 
[[1801년]](순조 1) [[한성]]으로 올라왔으나 정조는 사망한 상태였고, [[신유옥사]] 이후 관직을 단념하고 [[경기도]] [[화성군]] [[남양]]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시문과 학문, 저술 활동으로 소일하였다.
 
그는 성균관 유생 시절에 만난 김려(金鑢)와 그의 동생 김선(金鏇), 강이천(姜彛天) 등과 교유하였다.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