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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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難民, refugee) 또는 '''망명자'''(亡命者)는 [[박해]], [[전쟁]], [[테러]], 극도의 [[빈곤]], [[기근]], [[자연재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한 사람. 난민의 개념을 살펴본다면 1967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Protocol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지역 협약들에서 확대되어, 전쟁이나 기타 폭력에 의해 원래 살던 땅을 떠나게 된 사람들을 지칭하게 되었다. [[망명권]](right of asylum)을 행사하여 난민(refugee)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사람을 망명신청자(asylum seeker)라고 한다. 난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을 떠난 대규모 피난민들에 대해 법적으로 정의하면서 정식화되었다. 난민 보호 업무를 맡는 주요 국제 기구로는 [[국제 연합 난민 고등 판무관 사무소]](UNHCR)이 있는데, 2006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 난민 수를 8,400,000 여명으로 집계했다. 이것은 198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이다. 이 수치에 들어가지 않는 주요 난민 집단은 [[국제 연합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사업국]](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 for Palestine Refugees in the Near East, UNRWA)이 관할하는 4,300,000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집단이다.<ref>[http://www.un.org/unrwa/publications/index.html Publications/Statistics], UNRWA, update as of 31 March 2006</ref> [[미국]]의 난민 및 이민 위원회(U.S. Committee for Refugees and Immigrants)에서는 전 세계 난민 수를 총 62,000,000여명으로 집계했으며, 34,00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쟁 때문에 고향을 잃었으며, 이 중에는 자국 내에서 떠도는 [[국내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도 있다. 조국을 떠난 대다수의 난민들은 인접 국가에 망명을 신청한다. UNHCR과 각 정부가 정의한 난민에 대한 "영구적 해결방안(durable solutions)"으로는 자발적 본국귀환(voluntary repatriation), 비호국에 정착 및 통합(local integration into the country of asylum), 제3국 재정착(resettlement to a third country)가 있다.<ref>[http://www.unhcr.org/partners/PARTNERS/3f1408764.pdf Framework for Durable Solutions for Refugees and Other Persons of Concern], UNHCR Core Group on Durable Solutions, May 2003, p. 5</ref>
 
2005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난민이 크게 발생하는 주요 국가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미얀마]], [[수단]], [[팔레스타인]]이 있다. [[국내실향민]]이 가장 많은 나라는 [[수단]]으로 5백만 명이 넘는다. UNHCR 추정치에 따르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래 470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들이 고향을 등졌으며, 270만 여명은 이라크에, 200만 여명은 인접 국가에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ref name=UNHCR-04084> [http://www.unhcr.org/cgi-bin/texis/vtx/iraq?page=briefing&id=4816ef534 UNHCR - Iraq: Latest return survey shows few intending to go home soon]. Published April 29, 2008. Retrieved May 20, 2008.</ref><ref>{{웹 인용 |url=http://news.independent.co.uk/world/middle_east/article2640418.ece |제목=UN warns of five million Iraqi refugees |확인날짜=2008년 02월2월 19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1214144622/http://news.independent.co.uk/world/middle_east/article2640418.ece |보존날짜=2007년 12월 14일 |깨진링크=예 }}</ref><ref>[http://www.rferl.org/featuresarticle/2007/07/125F9BB7-46A1-4C2C-904A-F250A09C3393.html Iraq: Refugee Crisis Could Become Regional Security Threat]</ref> 매달 최소 6만명의 이라크인들이 집을 잃고 난민 신세가 되고 있으며.<ref>[http://www.indianmuslims.info/news/2007/aug/28/unhcr_says_4_2_million_iraqis_are_displaced_outside_iraq.html UNHCR says 4.2 million Iraqis are displaced in, outside Iraq]</ref> <ref>[http://www.sfgate.com/cgi-bin/article.cgi?f=/c/a/2007/07/23/MNGPCR4S601.DTL&feed=rss.news Refugee crisis in Syria enters new, dire phase / Displaced Iraqis running out of cash, and prices are rising<!-- Bot generated title -->]</ref> 2011년과 2013년 기준으로 자연재해로 발생하는 국가로는 [[일본]], [[필리핀]]이 있다.
== 정의 ==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보통 난민협약이라고 부름) 제1조 난민의 정의 규정에 따르면,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를 난민이라고 한다. 실례로 [[대한민국]]정부는 [[2007년]] [[8월]] [[미얀마]]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반(反)체제인사를 난민으로 인정하였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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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가 추진하여 감독한 [[로잔 조약]]에 따라 이루어진 1923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그리스와 터키의 인구 교환]]의 대상자는 약 2백만 명에 이르렀는데, 대부분은 강제로 난민 신세가 되었으며, 수백 수천 년간 사실상 본국에 국적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미국 의회는 1921년 비상이민할당법(Emergency Quota Act)이, 1924년에는 이민법이 통과되었다. 1924년 이민법은 남부와 동부 유럽인 이민자, 특히 1890년대에 미국으로 많이 밀려온 유대인, 이탈리아인, 슬라브인들도 막기 위한 것이었다.<ref>[http://seattletimes.nwsource.com/html/nationworld/2003265600_impghistory20.html Old fears over new faces], The Seattle Times, September 21, 2006</ref> 스탈린, 나치,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달아난 유럽 난민(주로 유대인과 슬라브인) 대부분은 미국 입국이 제한되었다. <ref>{{웹 인용 |url=http://www.usconstitution.com/immigrationactof1924.htm |제목=U S Constitution - The Immigration Act of 1924 |확인날짜=2012년 05월5월 26일 |보존url=https://archive.is/20120526214020/http://www.usconstitution.com/immigrationactof1924.htm |보존날짜=2012년 05월5월 26일 |깨진링크=예 }}</ref>
 
1930년 난민 고등위원회의 뒤를 이어 난센 국제 난민 사무소(Nansen International Office for Refugees)가 설립되었다. 이 기관의 가장 큰 성과는 난민을 위한 여권인 [[난센 여권]]으로, 덕분에 1938년 이 기관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난센 사무소는 자금 지원이 불충분했으며, 난민의 수는 늘어난 데다, 연맹 회원국들이 자국 국민 지원을 거부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사무소는 14개국을 설득하여 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구제하기 위한 약한 [[인권]] 수단으로 1933년 난민 협약(Refugee Convention)을 체결했다. [[나치]]가 집권하면서 독일에서 상당한 난민이 발생하자, 1933년 국제 연맹은 독일 난민 고등위원회를 세웠다. 이 고등위원회의 위임 지역은 이후 [[오스트리아]]와 [[수데텐란트]] 난민까지 포함하게 되다. 독일군이 [[뮌헨 협정]]으로 독일령이 된 [[체코슬로바키아]] 국경 지역에 진입하자, 1938년 10월 1일 이후 150,000 여명의 체코인들이 피난길에 올랐다.<ref>[http://www.radio.cz/en/article/46238 Forced displacement of Czech population under Nazis in 1938 and 1943], Radio Prague</ref> 1938년 12월 31일, 난센 사무소와 고등위원회는 해체되고, 국제연맹 보호하의 난민 고등위원회 사무소로 대체된다. 이때 [[에스파냐 내전]]에서 [[1939년]] 공화군이 패배하여 수십만 명의 에스파냐 공화주의자들이 프랑스로 넘어갔다.<ref>[http://news.bbc.co.uk/2/hi/programmes/from_our_own_correspondent/2809025.stm Spanish Civil War fighters look back]</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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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몇달 전 약 오백만 여명의 독일 민간인들이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소련]]군을 피해 독일의 [[동 프로이센]], [[포메른]], [[실롱스크]] 주를 탈출하여 난민으로 메클렌부르크, 브란덴부르크, 작센 지역으로 이동했다.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하자 연합국은 1937년 12월 31일 당시 독일 영토를 점령했으나(1945년 6월 5일 베를린 선언), 1945년 봄 폴란드인들이 남아있던 독일인들을 몰아내고([[인종청소]]), 연합국 수뇌들이 1945년 7월 17일 [[포츠담 회담]]을 열던 당시 승전국들은 혼란스러운 난민 상황에 직면했다. 1945년 8월 2일의 포츠담 의정서 제9항에 따라 독일 영토의 1/4을 폴란드 통치에 맡겼고, 의정서 제13항에 의거하여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에 남은 독일인들을 "질서 있고 인도주의적으로" 서쪽에 이동시키도록 했다. 포츠담에서 연합국이 승인하지는 않았지만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에 살던 수십만 명의 독일계 사람들은 소련의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고 이후 연합국이 점령한 독일 땅(나중에 독일 민주 공화국, 오스트리아, 독일 연방 공화국)로 추방되었다. 이로써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인구 이동이 일어났다. 총 1,500만 여명의 독일인들이 영향을 받았으며, 독일인 추방으로 2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ref>Statistisches Bundesamt, Die Deutschen Vertreibungsverluste, Wiesbaden, 1958; Alfred de Zayas, "Forced Resettlement", "Population, Expulsion and Transfer", "Repatriation" in Encyclopaedia of Public International Law, North Holland Publishers, Vols. 1-5, Amsterdam 1993-2003; Norman Naimark, The Russians in Germany, Harvard University Press, 1995; Alfred de Zayas, Nemesis at Potsdam, Routledge, London and Boston, 1977; Alfred de Zayas, "A Terrible Revenge" Palgrave/Macmillan 2006</ref> 2차 대전 종전부터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질 때까지 563,700명 이상의 난민이 소비에트 지배를 피해 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했다.
 
또 과거 러시아 시민이었던 수백만 명이 본인의 의사는 무시된 채 강제적으로 소련으로 송환되었다.<ref>''The United States and Forced Repatriation of Soviet Citizens, 1944-47'' by Mark Elliott Political Science Quarterly, Vol. 88, No. 2 (Jun., 1973), pp. 253-275</ref> 1945년 2월 11일 [[얄타 회담]]에서 미국과 영국은 소련과 재송환 협정에 서명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fff.org/freedom/0895a.asp |제목=Repatriation -- The Dark Side of World War II |확인날짜=2012년 04월4월 14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117182523/http://www.fff.org/freedom/0895a.asp |보존날짜=2012년 01월1월 17일 |깨진링크=예 }}</ref> 이 협정 때문에 강제적인 소비에트 송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1945년 5월 전쟁이 끝나자 영국과 미국 민정 당국은 유럽의 자국 군대를 동원해 과거 소련 주민이었던 수백만명을 소련으로 퇴거시키도록 조치했는데 이들 가운데는 수년 전에 러시아를 떠나 다른 국가의 시민권을 얻은 사람들도 많았다. 강제 송환 작전은 1945년에서 1947년 사이에 실행되었다.<ref>{{웹 인용 |url=http://www.hillsdale.edu/news/imprimis/archive/issue.asp?year=1988&month=12 |제목=Forced Repatriation to the Soviet Union: The Secret Betrayal |확인날짜=2012년 04월4월 14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20207142426/http://www.hillsdale.edu/news/imprimis/archive/issue.asp?year=1988&month=12 |보존날짜=2012년 02월2월 07일7일 |깨진링크=예 }}</ref> 종전 당시 5백만 여명 이상이 소련 출신의 "실향민"으로 서유럽에 있었다. 약 3백만 명은 독일 본토와 독일 점령지에서 강제 노동자(Ostarbeiters)<ref>[http://www.dw-world.de/dw/article/0,2144,1757323,00.html Final Compensation Pending for Former Nazi Forced Laborers]</ref>였다.<ref>{{웹 인용 |url=http://summeroftruth.org/enemy/barracks.html |제목=Forced Labor at Ford Werke AG during the Second World War |확인날짜=2008년 05월5월 20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1014235036/http://summeroftruth.org/enemy/barracks.html |보존날짜=2007년 10월 14일 |깨진링크=예 }}</ref><ref>[http://www.collectinghistory.net/ostarbeiter/index.html The Nazi Ostarbeiter (Eastern Worker) Program]</ref> 소련의 전쟁 포로와 나치 협력자들은 러시아 정보국 SMERSH(죽음의 스파이)의 관할하에 놓였다. 독일군이 생포한 소련 포로 570만 여명 중 350만 여명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포로 수용 과정에서 사망했다.<ref>{{웹 인용 |url=http://www.historynet.com/wars_conflicts/world_war_2/3037296.html |제목=Soviet Prisoners of War: Forgotten Nazi Victims of World War II |확인날짜=2008년 03월3월 30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330210330/http://www.historynet.com/wars_conflicts/world_war_2/3037296.html |보존날짜=2008년 03월3월 30일 |깨진링크=예 }}</ref><ref>[http://www.gendercide.org/case_soviet.html Soviet Prisoners-of-War]</ref> 나중에 본국으로 송환된 생존자들은 반역자 대우를 받았다.<ref>[http://www.channel4.com/history/microsites/H/history/t-z/warlords1stalin.html The warlords: Joseph Stalin]</ref><ref>{{웹 인용 |url=http://www.stsg.de/main/zeithain/geschichte/gedenken/index_en.php |제목=Remembrance (Zeithain Memorial Grove) |확인날짜=2017년 05월5월 1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80227000846/http://www.stsg.de/main/zeithain/geschichte/gedenken/index_en.php |보존날짜=2008년 02월2월 27일 |깨진링크=예 }}</ref> 독일에서 포로로 갇혀있던 150만 여명의 소련군 생존 병사들은 [[굴라그]]로 보내졌다.<ref>[http://www.smh.com.au/news/opinion/patriots-ignore-greatest-brutality/2007/08/12/1186857342382.html?page=2 Patriots ignore greatest brutality]</ref><ref>{{웹 인용 |url=http://www.moreorless.au.com/killers/stalin.html |제목=Joseph Stalin killer file |확인날짜=2014년 03월3월 01일1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30803144222/http://www.moreorless.au.com/killers/stalin.html |보존날짜=2013년 08월8월 03일3일 |깨진링크=예 }}</ref>
 
[[폴란드]]와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는 인구 교환을 시행했다. 폴란드-소련 국경의 동쪽에 살던 폴란드인들은 폴란드로 송환되었고(약 2,100,000 명), 국경 서쪽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로 송환되었다.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인구 교환은 1944년 9월부터 1946년 5월까지 지속되었다.(대략 450,000 명) 어떤 우크라이나인들(약 200,000 명)은 어느정도 자의에 따라 폴란드 남동부 지역을 떠났다.(1944년에서 1945년 사이)<ref>{{웹 인용 |url=http://www.migrationeducation.org/13.0.html |제목=Forced migration in the 20th century |확인날짜=2015년 02월2월 17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1021014423/http://www.migrationeducation.org/13.0.html |보존날짜=2015년 10월 21일 |깨진링크=예 }}</ref>
 
1947년 UNRRA는 폐지되고 그 업무는 새로 창설된 국제 난민 기관으로 이관되었다. 이관 계획은 원래 1947년 초에 있었으나 1947년이 되어서야 실행할 수 있었다. 국제 난민 기구(International Refugee Organization)는 1945년 창설된 [[국제 연합]]의 임시 조직으로 주로 UNRRA의 난민 재송환 및 재정착 업무를 맡았다. 약 백만 명의 난민 재정착이 끝난 1952년에 이 기구는 해체되었다. 이 시기 난민의 정의는 난센 여권이나 국제 난민 기구가 발행한 "자격 증명서(Certificate of Eligibility)"를 가진 사람을 일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