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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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초기 ===
==== 출생과 가계 ====
도산 안창호는 [[평안남도]] [[강서군|강서]](江西) 초리면 7리 봉상도(도롱섬)에서 [[1878년]] [[11월 9일]] 농부인 <ref name="조인형">{{서적 인용 |저자= 조인형 |제목= 역사와 오늘|꺾쇠표= 예|초판발행일자= 1999년 03월 15일 |출판사= 신서원 |id= {{ISBN|978-89-7940-910-9}} }} <br /> {{서적 인용 |편집자= 김인봉 |제목=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꺾쇠표= 예|초판발행일자= 2009-101-505 |판= 초판 |출판사= 한국교육방송공사 |쪽= 2권12 |id= {{ISBN|978-89-547-1115-9}}}}에서 재인용.</ref> [[순흥 안씨]] 안흥국(安興國, 족보상 이름은 안교진(安敎晋))과 제남 황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는 형 안치호(安致昊)와 형이 한명 더 있었고, 아래로는 그가 6세 때 여동생 [[안신호]](安信浩)가 태어났다. 선대는 [[문성공 안향]](安珦)의 후손으로, 대대로 [[평양]] 동촌(東村)에서 살았으나 아버지 때에 [[대동강]] 하류의 도롱섬으로 옮겨왔다.
 
[[공조]][[참의]]를 지낸 [[안종검]]의 17대손으로, [[조선 세조|세조]] 때의 재상 [[안지귀]], [[조선 중종|중종]]대의 정승 [[안당]]은 그의 방계 선조들이었다.<ref>17대조 안종검의 형 안종약의 손자와 증손으로, 안창호에게는 15대 방조와 14대 방조가 된다.</ref> [[안중근]], [[안공근]] 일가는 안종검의 형제인 [[전라도]][[관찰사]] 증 [[병조]][[참판]] [[안종신]]의 후손으로 역시 그의 먼 친족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계는 몰락하여 [[평안남도]]로 이주하여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의 처음 이름은 치삼이었다. 그러나 10세가 되어 학교에 다닐 무렵 이름을 창호로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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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는 리버사이드에서 오렌지 따는 일을 계속 하다가 삼일운동으로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설립되려하자 모은 성금을 가지고 상하이로 떠났다. 1924년 중국 남경에 동명학원을 설립하고, 북경에 ‘동포에게 고하는 글’ 작성하여 보냈다. 1925년 미국으로 잠시 돌아왔다가 1926년 다시 중국으로 떠났다. [[1928년]] 민족유일당운동에 동참하여 [[이동녕]], 이시영, 김구 등과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을 결성하는데 참여하였고, 대공주의를 제창하였다.
 
[[1926년]] [[5월 3일]], 그가 상하이로 도착하기 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를 국무령으로 선출해놓고 있었다.<ref name="자퇴1">이연복, 《대한민국 임시정부 30년사》(이연복 지음, 국학자료원, 2006) 39페이지</ref> 그러나 [[5월 16일]] 상해로 돌아온 뒤 그는 국무령직에 취임하지 않았다.<ref name="자퇴1"/><ref>{{웹 인용 |url=http://peacemaking.co.kr/news/news/view.php?newsno=2613&papercode=PEACE&pubno=259 |제목=::::: 평화 전문 인터넷 신문 [평화만들기&#93; :::::<!-- 봇이 따온 제목 --> |확인날짜=2010년 02월2월 06일6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11121213948/http://peacemaking.co.kr/news/news/view.php?newsno=2613&papercode=PEACE&pubno=259 |보존날짜=2011년 11월 21일 |깨진링크=예 }}</ref>
 
안창호가 국무령을 사퇴한 배경에는 임시정부 내 기호파의 반발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직계와 이승만을 지지하던 [[조소앙]] 외에도 기호파 계열은 그의 국무령 취임을 극렬 반발했다. [[5월]] [[임시의정원]]에서 [[양기탁]]의 후임으로 안창호를 국무령에 선임하자, 기호파의 중심인 [[안공근]], [[김규식]], [[김구]], [[김보윤]](金甫潤) 등은 서북파인 안창호가 국무령이 되는 것을 반대하였다.<ref name="oh288">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288페이지</ref> [[김규식]]은 기호파는 아니었으나 기호파와 함께 연대하여 안창호의 취임을 반대했다. 결국 안창호는 국무령에 선출된지 13일만에 사퇴하여 사태를 수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