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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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경==
수도경작은 기원전 1200년경부터 한반도에서만 사용되었다. 기존에는 [[무거동]]과 [[마전리]] 유적을 통해 기원전 7~5세기를 최상한 연대로 보았으나, 2015년 5월 [[세종시]]에서 약 4000평 가량의 논농사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12~1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3세기 한반도로부터 일본 열도(특히, 큐슈)로 사람들이 이동하였는데<ref>{{서적 인용 |제목= 21세기 한반도와 주변 4강대국 | 저자= 강성현|연도= 2005 |출판사=가람기획 |쪽= 156 |id={{ISBN|89-8435-224-1}} |인용문= 김달수의 《일본 열도에 흐르는 한국 혼》에 의하면 고대 한반도의 고구려․백제․신라․가야국으로부터 일본 열도로의 이동이 시작된 것은 기원전 3세기, 일본의 이른바 야요이(彌生)시대부터였다고 한다.}}</ref> 이들 고대 한국인(야요이인)들이 일본에 대규모 관개 시설을 사용하는 경작(水稻耕作)을 전수해주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ref>{{웹 인용 |url=http://news.sciencemag.org/sciencenow/2003/05/30-03.html?ref=hp |제목=Earlier Start for Japanese Rice Cultivation |저자=Dennis Normile |출판사= Sciencemag |날짜=2003-505-30 |인용문= One theory holds that immigrants fleeing the turmoil of China's Warring States period, beginning about 450 B.C., took the technology overland to present-day Korea, then across the relatively narrow Korea Strait to Japan's Kyushu Island. An alternative theory is that seafaring traders carried the technique to lands bordering the Yellow and East China seas around 1000 B.C. or earlier.}}</ref> 또한,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일본 각지의 초기 논의 구조 형태와 농기구들, [[토기]], 주거 형태와 부락 등을 통해 그러한 주장이 고고학적으로도 규명되고 있다. 한반도 벼농사의 도래에 관해 [[교토대학]] 사학과의 가도와키 데이지(門脇禎二) 교수는 토기의 고고학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이타즈케]]에서 시작한 벼농사와 한민족으로 부터 전수받은 청동기를 특징으로 한 야요이 문화는 세토 내해를 통해 동쪽으로 전해졌는데, 현재 [[후쿠오카]]와 [[가라쓰]], [[요시노가리]], 그리고 세토 내해의 [[오카야마]], 킨기 지방의 [[나라 분지]]에 전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쿠니]]들이 세워졌다. 수도경작은 [[기원전 2세기]] 이후에는 [[주부 지방]]에 보급되었고, [[1세기]] 전까지 [[간토]]와 [[도호쿠]] 남부에 전파되었다. 최종적으로 [[3세기]]까지 도호쿠 북부까지 벼농사가 전파됨으로써 홋카이도를 제외한 고대 일본은 3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농경 생활이 행해지기 시작한다.<ref name="구태훈"/> {{Rp|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