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7번째 줄:
유사 이래 전라남도 지역은 마한의 땅이었으나 [[온조왕]]~[[다루왕]] 치하의 백제에 의해 마한이 패망하고 노령산맥 이북의 영역이 백제에 편입되었다. 노령산맥 이남의 호남 지방에 잔존한 마한 세력은 백제의 영향력하에서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침미다례]]라는 소국 연맹을 형성했다.
 
침미다례는 [[근초고왕]] 때에 백제의 지배하에 들어가 백제에 신속하는 한편으로 영산강 유역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문명과 정치 체제를 유지했는데 3세기 초입에는 나주의 보라국(保羅國또는 不彌國)을 중심으로 가야의 [[포상팔국]]에 가맹해 [[가락국]] 및 [[신라]]와 항쟁하기도 하는 한편 중국과의 교역 등을 통해 국제 사회에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475년]] 고구려의 압력을 받고 있던 한성백제가 고구려군의 대대적인 남침으로 패망하여 잔여 세력이 [[웅진]]으로 천도하는 등 전남 지역에 대한 백제의 영향력이 급속히 약화되자 [[대가야]]가 서방으로 진출을 개시해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여수, 순천, 광양 등지를 정복했다. 후에 [[동성왕]] 치하에서 세력을 회복한 백제는 [[무령왕]] 대에 남방으로 경략이 이루어져 침미다례를 완전히 병합해 [[구지하성]](久知下城:전남 장성)을 중심으로 5방 중에 남방(南方)을 설치했다. 침미다례를 병합한 이후에는 전북의 [[기문 (옛 지명)|기문]] 지방과 함께 가야가 차지한 전남 동부 지역-섭라 지방에 대한 영유권을 두고 가야와 분쟁을 벌여 축출함으로써 호남 지역을 완전히 백제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