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징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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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징옥은 뛰어난 무장으로 [[김종서]] 등의 부장으로 출정, 관직 생활의 반 이상을 경원첨절제사·경원절제사·영북진절제사·판경흥도호부사·함길도 도절제사 등 [[함경도]]에서 보내면서 변방의 수비, [[여진족]] 토벌, 4군과 6진의 개척 등에 공을 세웠다.
 
그는 용감하고 위엄이 있어 야인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청렴결백하여 우리 백성이나 야인의 물건에 절대로 손대지 않았다 한다. 그는 동북변경의 개척 초창기에 제일선에 배치되어 야인을 제압하고 복종시키는 데 절대적인 공로가 있었다<ref>{{웹 인용 |url=http://koreandb.nate.com/history/people/detail?sn=2314 |제목=네이트 한국학 |확인날짜=2012년 10월 09일9일 |보존url=https://archive.is/20120713155850/http://koreandb.nate.com/history/people/detail?sn=2314 |보존날짜=2012년 07월7월 13일 |깨진링크=예 }}</ref>는 평가가 있다. 그의 청렴성에 대한 실록의 기록이 있는데, 문종 때 함길도 도관찰사가 이징옥의 고생을 보다못해 '본도 도절제사(都節制使) 이징옥(李澄玉)이 가산(家産)을 돌보지 않고 오랫동안 변방 수어를 맡았는데, 살림이 본디 가난하고 또 이제 아내가 죽은 지 이미 오래니, 누가 옷바라지를 하겠습니까?'라는 통서(通書)하였었다. 이에 문종은 이징옥에게 의복 3벌을 하사하고, 가을에는 겹옷을 주라고 하교하였다.<ref>문종실록 7권, 1년(1451년) 5월 9일 1번째기사</ref>
 
[[조선 세조|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발하여 정변을 기도했으나 그 스스로 황제를 칭제했다는 점에서 [[조선 단종|단종]]의 충신으로 볼수 있는가 여부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은 세조와 그의 공신들이 그들의 시각으로 작성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단종 실록]]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이징옥의 난은 악의적으로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