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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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朝鮮王陵)은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 [[추존왕]]들의 무덤을 총칭하는 말로, 일반적으로 [[1897년]]에 수립된 [[대한제국]]의 역대 황제와 황후의 무덤도 포함된다. 조선왕릉은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의 왕릉 제도의 영향을 받았는데, [[고구려]]의 호석(護石)제도는 [[신라]]와 [[고려]]를 거쳐 조선왕릉에 그대로 전해졌고,<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3619&mobile&categoryId=200000424 네이버 지식백과 - 호석]</ref> 조선왕릉의 전체적인 형태는 [[공민왕]]의 무덤인 [[현정릉]]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ref>[http://royaltombs.cha.go.kr/portal/scientific/scientific_02_03.jsp?mc=KP_05_02 조선왕릉 전시관 - 왕릉 변천사]</ref> 조선왕릉은 한국 역대 왕조의 왕릉들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왕과 왕비들의 능이 모두 완전한 보존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의 왕자와 공주, 후궁들의 무덤까지 함께 보존되어 있으며, [[국조오례의]], [[경국대전]], [[의궤]]와 같은 조선왕릉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과 각 왕릉들의 조성과정에 들었던 인력, 그리고 도구에 대한 상세한 기록까지 보존되어 있어 조선 시대의 장례 문화와 조선왕릉의 규정 및 역사, 조선왕릉의 제례 과정 등을 알 수 있다.<ref>{{웹 인용|url = http://royaltombs.cha.go.kr/portal/introduce/introduce_01.jsp?mc=KP_01_01|제목 = 조선왕릉이란?|확인날짜 = 2009-505-13|저자 =|날짜 = |출판사 = 문화재청|원본일자 = |인용 = }}</ref> 또한,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왕릉에서는 때마다 제례 의식을 치르고 있어 조선 시대의 무형적인 문화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ref>[http://royaltombs.cha.go.kr/portal/world_heritage/royal_mausoleum.jsp?mc=KP_07_01 세계유산으로써의 조선왕릉]</ref>
 
== 구조와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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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지===
택지(擇地)란, 승하한 왕이 묻힐 곳을 정하는 과정으로 대부분은 지관이나 대신들이 정하지만, 왕이 직접 정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왕릉은 조선 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의 “능역은 한양성 사대문 밖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라는 입지 조건에 따라 선정되었다. 실제로 경국대전이 편찬되기 이전의 태조의 조상들의 능, [[신의왕후]]의 능인 [[제릉]], [[조선 정종|정종]]의 능인 [[후릉 (조선)|후릉]]과 [[여주]]의 [[조선 세종|세종]]과 [[조선 효종|효종]]의 능인 [[영녕릉|영·녕릉]], [[영월]]에서 객사한 [[조선 단종|단종]]의 [[장릉 (조선 단종)|장릉]]을 제외하면 서울 사대문에서 100리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왕릉은 풍수지리적인 요소를 고려해 위치를 선정하였으며, 바람, 물, 불, 나무, 흙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재해의 발생이 없어야 하고, [[배산임수]] 지형을 갖추어야 했다.<ref>{{웹 인용|url = http://royaltombs.cha.go.kr/portal/funeral/king_make_01.jsp?mc=KP_03_02_01 |제목 = 왕릉과 풍수|확인날짜 = 2009-505-13|저자 = |날짜 = |출판사 = 문화재청|원본일자 = |인용 = }}</ref>
 
===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