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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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얀은 아드리아노폴리스를 다시 포위하였지만 쿠만족 기병대의 철수와 라틴 제국의 새로운 황제인 보두앵 1세의 동생 앙리의 진군으로 인해 함락시키는 데는 실패하였다. [[1207년]] 칼로얀은 비잔티움 저항 세력 중 가장 강력했던 [[니카이아 제국]]의 [[테오도로스 1세]]와 반 라틴 동맹을 맺었다. 같은 해 9월 4일 칼로얀의 군대는 테살로니키 왕국의 십자군 통치자 보니파키오 몽트페라트를 죽였다. 칼로얀은 다시 한번 아드리아노폴리스를 포위하였으나, [[1207년]] 10월 초 그는 그의 쿠만족 동맹군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칼로얀의 치세 대부분은 외국(비잔티움 제국과 라틴 제국)과 대립과 관련되었고, 이 과정에서 그의 잔인함이 드러났다. 몇몇 그의 무자비함은 그의 쿠만족 동맹군이 벌인 일이었고, 칼로얀의 억압 정책은 적의 지배층을 노린 것이었고 평민들은 자비롭게 대해졌다. 보두앵 1세의 죽음과 관련된 전설에서는 그의 아내가 보두앵이 그에게 청혼했었다고 거짓으로 주장하자 분노한 칼로얀이 그의 시신을 훼손하였다고 묘사한다. 칼로얀의 시체는 그의 도장이 새겨진 반지와 함께<ref>{{웹 인용 |url=http://www.rightnotprivilege.org/layout/home/tsar.jpg |제목={title} |확인날짜=2013년 12월 20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0303205613/http://www.rightnotprivilege.org/layout/home/tsar.jpg |보존날짜=2009년 03월3월 03일3일 |깨진링크=예 }}</ref> 터르노보의 성 40 순교자 성당에 묻혀져있던 것이 발견되었다.
 
== 가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