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넬 울리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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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몇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은 [[컬럼비아 대학]](Columbia University)에 입학, [[1926년]]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었는데, 첫 번째 소설인 《요금》(원제 Cover Charge,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영향을 받았다)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곧 싸구려소설(pulp fiction)과 탐정소설(detective fiction)을 쓰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소설인 《Children of Ritz》가 유명세를 타면서, 아무런 영화계 경력도 없는 그를 할리우드 영화사가 채용. 영화업계에서 일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주.
 
* [[로스앤젤레스|L.A.]] 에 거주하면서 영화 작가로 활동하던 [[1930년]], 글로리아 블랙톤(Gloria Blackton, 1910 - 1965, <small>초기의 영화사라고 할 수 있는 Vitagraph Company를 세운 무성영화제작자 J. Stuart Blackton의 딸</small>)과 결혼하였지만 3개월 만에 파경에 이르렀고, 훗날([[1933년]]) 결혼은 아예 취소되었다. 부인에 의하면 울리치는 가장 친밀한 순간에도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그는 내게서 2피트가량 떨어져 앉은 자리에서, 결혼해주지 않겠느냐고 물었어요." 부인과 결별한 후, [[뉴욕 시|뉴욕]]의 어머니곁으로 돌아가서([[1932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는 [[1957년]]까지 함께 살았다. 부인에게 일기장을 남겨놓았는데, 그 일기장은 사이가 안좋았던 부인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작가의 남성편력을 담고 있었으며, 블랙톤의 자매인 매리안(Marian)이 네빈스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지저분하고 끔찍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기장이 결혼을 끝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에 따르면 일기장이 들어있던 (그리고 자물쇠를 채운) 가방안에는 울리치가 상대를 찾아 밤거리를 배회할 때 입던 선원복도 있었다고 한다.<ref>{{웹 인용 |url=http://www.glbtq.com/literature/woolrich_c.html |제목=glbtq >> literature >> Woolrich, Cornell<!-- 봇이 붙인 제목 --> |확인날짜=2008년 08월8월 31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70814195306/http://www.glbtq.com/literature/woolrich_c.html |보존날짜=2007년 08월8월 14일 |깨진링크=예 }}</ref>
 
* 자신의 수입으로 그보다 좋은 곳을 고를 수 있었음에도 뉴욕의 허름한 호텔 (Marseilles hotel, <small>Broadway and West 113th Street</small>)에서 모친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와 함께 살았다. 1957년 10월 6일 모친의 사후, 잠시 이모(Estelle Tarler Garcia)와 함께 뉴욕의 (역시 허름한) 호텔(Franconia hotel, <small>20 West 72nd Street</small>)에서 기거한 적도 있지만, 결국 값비싼 세라톤-러셀 호텔(Sheraton-Russel hotel)을 비롯 뉴욕의 호텔들을 혼자서 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