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 (176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토막글 정리
12번째 줄:
그의 가계는 여유가 있어 장서를 소지했고, 종을 몇명 두어 어장을 운영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이종사촌 [[유득공]]을 통해 [[청나라]]의 서적을 구해서 읽기도 했다. 젊어서 [[한성]]으로 올라가 [[성균관]]의 유생이 되었고, 성균관 유생 재학 중이던 [[1790년]](정조 25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생원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 정조|정조]]의 문체반정으로 [[과거 시험]]을 단념하고 낙향, 충군을 청하는 상소까지 있었지만 충군에 대한 청원은 하지 않고 낙향했다. [[1798년]] 봄 [[경상도]] [[삼가현]]의 요청으로 내려가 [[1801년]](순조 1) [[2월]]에 귀향했다.
 
[[1801년]](순조 1) [[한성]]으로 올라왔으나 정조는 사망한 상태였고, [[신유옥사]] 이후 관직을 단념하고 [[경기도]] [[화성군]] [[남양]]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시문과 학문, 저술 활동으로 소일하였다.
 
그는 성균관 유생 시절에 만난 김려(金鑢)와 그의 동생 김선(金鏇), 강이천(姜彛天) 등과 교유하였다.
19번째 줄:
* 이종 사촌형 [[유득공]]은 근기남인 [[실학]]자이자 근기남인 [[성리학]]자였던 [[이익 (1681년)|성호 이익]]의 문하생이었다.
 
* [[남인]]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으나 이옥의 외할아버지 [[홍이석]]의 8촌 재종조부뻘 되는 [[홍우원]]은 숙종 때의 남인 중진이었다. 이옥의 외외증조부 [[이서우 (1633년)|이서우]]가 [[북인]]에서 [[남인]]으로 전향한 인물이고, 유득공의 스승 이익 역시 북인 당원인 소릉 [[이상의]]의 후손이다.
 
* 큰 외종조부 홍이하는 [[윤휴]]를 옹호한 일과 [[서인]] 관료들을 비방한 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 외할머니 우계이씨는 송곡 [[이서우 (1633년)|이서우]]의 서녀인데, 외외증조부 [[이서우 (1633년)|이서우]]의 어머니는 다시 그의 5대조 [[이경유]]의 두번째 부인 죽산박씨 소생의 적녀였다. 이옥의 고조부 [[이기축]]은 [[이경유]]의 첩인 장흥고씨 고언명의 딸 소생 서자이나, 간혹 얼자라는 기록들, [[이서]]가 [[이기축]]을 소개할 때 자신의 얼속이라 칭한 것, [[승정원일기]] 천얼로도 언급되는 등 노비 소생의 얼자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43번째 줄:
* [[이익 (1681년)|이익]]
{{Col-end}}
{{토막글|문학|시인}}
 
{{토막글|문학}}
{{토막글|시인}}
 
[[분류:조선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