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조선귀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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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金永哲, [[1841년]] ~ [[1923년]])은 구한말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에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 생애 ==
본관은 [[광산 김씨|광산]]이며 출생지는 [[한성부]]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김보현 (1826년)|김보현]]의 아들로 태어나 [[1872년]] [[과거 (조선)|과거]]에 급제한 뒤 병조정랑을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아버지인 김보현이 [[명성황후]]의 [[여흥 민씨]] 집권 아래 고위직을 역임하여 그도 요직에 임명되었다. 김보현은 [[선혜청]] 당상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로 근무하다가 [[1882년]] [[임오군란]] 때 분노한 구식 군인들에게 현직 선혜청 당상 [[민겸호]]와 함께 피살되었다.
 
김영철은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 등을 거쳤다. 민씨 세력의 신임을 받아 [[1886년]] [[형조판서]]를 시작으로 판서 벼슬을 두루 역임했고, [[1902년]] [[시종원경]]이 되었다.
 
[[1910년]] 70세 이상의 퇴임 관리를 위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이해그해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합방에 협조한 원로 관료로서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신의 작위를 습작 받은 아들 [[김영수 (1887년)|김영수]]와 함께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 같이 보기 ==
* [[김보현 (1826년)|김보현]]
* [[김영수 (1887년)|김영수]]
 
== 참고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