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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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후예로, [[김은열]](金殷說)의 둘째 아들인 평장사(平章事) 김숙승(金叔承)의 10대손이며<ref>김숙승(金叔承)-김일긍(金日兢)-김이청(金利請)-김의화(金義和)-김민성(金敏成)-김효인(金孝印)-김방경(金方慶)-김순(金恂)-김영후(金永煦)-김천(金蕆)-김사형(金士衡)</ref>, [[김방경]](金方慶)의 현손이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출사하여 앵계관직(鶯溪館直)이 된 후 감찰규정(監察糾正) 등을 거쳐 [[공민왕]] 때 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이후 [[조준]](趙浚) 등과 함께 대간을 지냈고 [[1377년]] 집의(執義)와 [[개성부]] 부윤이 되어 보리공신(輔理功臣)의 호를 받았다.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 회군]] 뒤에는 교주강릉도도관찰출척사(交州江陵道都觀察黜陟使)가 되었고 [[1390년]], 밀직지사(密直知使)로 [[대사헌]]을 겸하다가 문하부지사(門下府知事)로 특진하였고 뒤에 삼사우사(三司右使)가 되었다. [[1390년]], 윤이(尹츺)와 이초(李初)의 무고로 발생한 [[윤이 이초의 옥사]] 이후 정당을 둘러싸고 당시 찬성사였던 [[정몽주]](鄭夢周)와 대립하여 서로 [[탄핵]]하였다.
 
[[1392년]] [[7월]], 여러 신하들과 함께 [[이성계]](李成桂)를 추대하여 [[조선]]왕조를 성립하였다. 조선이 개국되자 승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로 판상서사사(判尙瑞司事)와 병조전서(兵曹典書)를 겸임하였으며 곧 응양위 상장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