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드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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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그드인'''들은 8세기 [[신라]]와도 교역을 하였다. [[최치원]]의 [[속독 (춤)|속독]](束毒)은 소그드인 탈춤을 묘사한 것이다. [[처용가]]의 처용이 서역인, 즉 소그드인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8세기 신라 음악이 서역인(소그드인)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라 시대에는 고유 음악을 '''향악'''(鄕樂), 서역에서 유래한 음악은 '''속악'''(俗樂), 중국 당나라의 음악은 '''당악'''(唐樂)이라고 불렀다. 통일신라 때에 [[최치원]]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에 "수만리를 걸어오느라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구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북청사자놀이와 같은 서역에서 들어온 연희를 보고 지은 시구라고 한다. 본래 소그드인은 스키타이로 불렸는데, 그들도 신라처럼 금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한국의 국악은 그 본질적 요소는 속악에서 유래하였다.
 
그 활동 범위는 동로마 제국에서 [[당나라]]의 [[장안]]에까지 이르렀지만, [[이슬람]] 세력의 대두에 의해 이슬람화가 진행되어, 12세기에는 그 민족적 특색이 없어졌다. 소그디아나 지방은 나중에, [[우즈베크인]]의 남하에 따라 투르크화가 진행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