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외부 링크: . using AWB
Choboty (토론 | 기여)
잔글 띄어쓰기 수정
37번째 줄:
| 출생이름 = Joseph Aloisius Ratzinger
|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27|04|16}}
| 출생지 = {{국기나라|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 주바이에른주]] [[마르크틀암인]]
| 선종일 =
| 선종장소 =
91번째 줄:
=== 생애 초기 (1927-1951) ===
[[파일:PopeBenedicts1stHome.jpg|섬네일|왼쪽|250px|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
요제프 라칭거는 [[1927년]] [[4월 16일]] [[성 토요일]] 아침 8시 30분,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 주바이에른주]] [[마르크틀암인|마르크틀 암 인]]에서 요제프 라칭거와 마리아 라칭거의 2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같은 날 그는 [[유아세례]]를 받았다. 아버지는 경찰관이었으며,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형 [[게오르크 라칭거]]는 [[사제]]이자 레겐스부르크 주교좌 성당 소년 성가대의 전(前) 지휘자다. 그의 누나 마리아 라칭거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1991년에 죽을 때까지 집안을 돌보았다. 그들의 종조부는 독일의 정치가 [[게오르크 라칭거 (정치인)|게오르크 라칭거]]이다.
 
교황의 일가는 어린 시절부터 그가 성직자의 소질을 타고났다고 증언하였다. 꽃을 뿌리며 뮌헨 대교구장이었던 [[추기경]]의 방문을 환영한 아이들 무리에는 다섯 살 무렵의 라칭거도 있었다. 당시 추기경 특유의 의복을 본 후로 그는 추기경이 되고 싶어 했다고 나중에 회고하였다.
538번째 줄: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8월 18일 [[쾰른]]에서 열린 [[세계 청년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교황에 즉위한 이후 첫 순방 나들이로 모국인 [[독일]]을 찾았다. 나흘에 걸친 첫 국외 방문에서 가톨릭 수장으로서 젊은이들에게 한층 다가서는 한편 유다교와 이슬람교 지도자를 만나 종교 간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세계 청년 대회가 열린 쾰른에서는 100만 명의 젊은이에 둘러싸여 열광적인 환호를 받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젊은이들에게 진리를 추구할 것을 권면하면서 신앙의 원칙을 회복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행한 강론에서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의 창조주, 자유의 보장자, 그리고 참된 선함과 진리의 보장자이신 살아 있는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9월 9-14일 동안에는 자신의 고향 [[바이에른 주바이에른주]]를 방문하였다. 바이에른 교구의 초청으로 이뤄진 방문에서 교황은 [[뮌헨]], [[알퇴팅]], [[레겐스부르크]]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자신의 생가가 있는 [[마르크틀암인|마르크틀 암 인]]과 사제 서품을 받았던 [[프라이징]]도 들렀다.
 
2011년 9월 22-25일 3박 4일 일정으로 세 번째로 독일을 방문했다. 교황은 에첼스바흐 성모 순례지를 비롯해 베를린과 에르푸르트, 프라이부르크 등지를 순방하면서 미사를 집전하고 기도회를 주재하였다. 또한, 독일 의회 하원에서 한 20분간의 연설에서 “독일은 권력이 부패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면서 나치와 히틀러를 비유해 정치인의 권력 남용과 부패를 경고했다. 교황은 앞서 대통령궁 환영 행사에서는 “우리 사회가 종교에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교황은 정치인들과의 회동 뿐만 아니라 유다교를 비롯해 정교회, 이슬람, 개신교의 지도자들과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