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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대한인 공동회|대한인 동지회}}
 
[[1920년]] [[7월]] [[프랑스]]를 떠나, [[미국]] [[뉴욕 주뉴욕주]] 뉴욕 항에 도착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미국 뉴욕 한인유학생회장·[[1922년]] 북미 거주 한국인 교민단 총단장 등을 지냈으며, 1923년 [[6월]] <3·1 신보사>를 창간했다. 이 무렵 그를 찾아온 [[안창호]]를 면담하고 [[흥사단]]의 단원들이 그에게 가입권고가 있었으나 허정은 거절하였다. 비록 그는 자신을 도와달라는 안창호의 요청은 거절하였으나, 후일 [[안창호]]와 [[이승만]]이 갈등할 때와 국민회와 동지회, 재미 동포사회간 갈등이 있을 때마다 중재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미국]]으로 건너온 뒤 학업이 여의치 앉자 그는 교민 사업에 헌신하였다.<ref name="goho141">고정휴, 《이승만과 한국독립운동:현대한국학연구소 학술총서 8》 (연세대학교출판부, 2004) 141페이지</ref> 그의 헌신성에 감격한 [[이승만]]과 [[안창호]]는 어떻게든 그를 자신의 곁에 두려고 했고, 나중에 그가 귀국할 때는 [[이승만]]이 그의 귀국을 말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