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과학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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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시절 ===
김종훈은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난을 겪으며 성장했다. 5세 무렵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의붓 어머니와 살게되었다.
[[1975년]], 14살의 나이로 미국 [[메릴랜드 주메릴랜드주]]로 이민을 갔으나 힘든 생활은 계속되었다. 이민 전까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던 수줍음이 많아 학교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미국 아이들은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 아니냐며 놀려대기 일쑤였고, 점심값 50센트가 없어서 정부에서 빈민들에게 나눠주는 식권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지만 창피한 마음에 점심을 거르는 날이 더 많았다. "그 나이에는 그게 왜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돈이 없어서 공짜 밥 먹는다는 게. 그래서 이제 밥 안 먹는 이유를 대요. 밥 안 먹기도 힘들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있으면 살짝 보여줘서 먹고.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라고 당시 일을 회고하였다. 당시 스트레스가 심하여 집에 올 때면 항상 코피가 났다고 후에 회고하기도 하였다. 어눌한 영어실력 탓에 고교 시절 학교 감사관은 지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며 별도로 IQ 검사를 받게 했다. 하지만 분석력과 이해력이 뛰어나고, 기억력은 그것만 못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이로 인해 "외울 게 많은 의사는 안 되겠군. 말도 못하니 변호사도 어림없지. 천상 물리학자나 공학자가 되어야겠다"고 진로를 결정하였다. 그는 생계 유지를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문 배달, 식당 주방보조, 잔디 제거, 슈퍼 계산대 점원 등으로 일했다. 가정 생활 역시 악화되고 17세에 아버지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의 고등학교 선생이었던 댄 브레든(Dan Bredon)은 그의 처지를 알고는 자신의 집 지하실에 월세를 내고 살게 해주었다. 수 년 후 벤처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이 선생의 이름을 기념하여 고등학교에 기부를 하게된다. 1978년, 수학선생은 그에게 [[애플 (기업)|애플]]의 PC를 보여주었다. 그는 즉시 여기에 빠져들었고 "[[스티브 잡스]]가 했는데 내가 못하란 법은 없지"하며 꿈을 키웠다. 그의 가난과 재능을 안쓰럽게 여긴 교장은 조기 졸업을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