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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을 내의원에 천거한 미암 [[유희춘]]의 일기 《[[미암일기]]》에 따르면 [[김시흡]]이라는 인물을 거론하며 허준의 외삼촌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여기에서 서간학자 이양재는 김시흡의 기술을 “적(嫡) 외삼촌”이라고 기록한 것에 의거하여, 허론의 재취부인 영광 김씨도 서녀로서, 허준은 서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적(嫡)이라는 표현은 허준의 생모인 영광 김씨에게 동복남매의 남자 형제 말고도 서자 남자형제가 있었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허준이 서자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는 없다. 또한, 허준의 동복동생으로 알려진 [[허징]]은 [[1586년]]에 문과 알성시 병과에 급제하여 그 이름과 부모관계가 당시의 기록인 [[국조방목]]에 남아 있다. 서자는 문과, 즉 대과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야말로 허준의 생모 영광 김씨가 적실 소생이며, 허준(許浚)과 허징(許澂) 형제 역시 서자가 아니라는 주장이 가능하다.(문과방복에 허징을 검색해보면 문과에 급제한건 맞으나 따로 서자라고 표시되어있다. 조선시대엔 서자도 문과를 볼수있었다. 올라갈수있는 품계가 제한되어있었을뿐) 허준이 [[1573년]]에 이미 정3품 내의원정을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1575년]]에 선조의 어의로 임명되었으므로, 허징이 과거를 치렀던 1586년 시점에는 이미 그 어머니와 허준의 동복동생인 허징 또한 중인 출신이 아닌 반가의 혈족으로 인정받았을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허준이 실제로 당상관 반열에 오른 것은 [[1590년]]경의 일로 허징이 과거에 급제한 1586년보다 4년 뒤의 일이기 때문에 이 대목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허준 초상화 논란 ===
허준의 실제 초상화로 추정되던 작품 또는 허준의 초상화로 전하던 작품이 [[1980년]] 초 양천허씨대종회에 입수되었다. 그러나 당시 미술인협회의 임원인 한의사 모 씨가 초상화에 허준이라 써 있지가 않았으니 가짜라고 하였다. 이 초상화는 뒤에 행방이 사라졌고, 사진이 전한다.
 
그려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이전 누군가 허준을 상상하여 그린 상상 초상화가 전했으나 역시 사라지고 전하지 않는다. 현재의 허준 표준초상화는 [[조선 철종|철종]]의 어진 복원에 참여한 최광수가 그린 상상화이다.
 
=== 허준의 후손 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