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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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스라엘의 역사}}
=== 고대 이스라엘 ===
[[파일:Kingdoms of Israel and Judah map 830.svg|
이스라엘이 위치하는 지역은, 고대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알려진 지역이며, 가나안의 땅이라고도 불려, [[가나안|가나안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성경의 기술에 의하면, 유대인의 선조에 해당하는 [[히브리인]] 또한 이 지역에 거주를 위해 이동해왔으나, 그 자손은 [[이집트]]로 이주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집트인의 노예 취급을 받았다. 이윽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이 지역으로 돌아온 히브리인([[이스라엘 민족|이스라엘인]])은, 이 지역을 정복하여 [[기원전 11세기]] 경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ref name="Roth">{{서적 인용|url=|제목=ユダヤ人の歴史|성=Cecil Roth(長谷川真・安積鋭二 번역)|이름=|날짜=1997년|출판사=みすず書房|isbn=978-4622049081|확인날짜=}}</ref>{{rp|8~20}}[[다윗]]과 [[솔로몬]]을 거쳐, [[기원전 930년]] 경, 내란으로 인해 이스라엘 왕국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멸망당하며, 남쪽의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신바빌로니아 제국|신바빌로니아]]에 멸망당했다. <ref name="Roth" />{{rp|24~37}}<ref>{{웹 인용|url=http://mfa.gov.il/MFA/AboutIsrael/History/Pages/HISTORY-%20Biblical%20Times.aspx|제목=History-BibleTimes|성=이스라엘 외무성|이름=|날짜=|웹사이트=|출판사=|확인날짜=}}</ref> 신바빌로니아 또한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제국]]에 멸망하며,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황제에 의해 [[신바빌로니아 제국|신바빌로니아]]의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다수 돌아와 터전을 재건하게 된다. 그 후 이 지역은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중에 정복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는 분열하여, 이곳은 [[셀레우코스 왕조]](시리아 왕국)의 지배하에 놓이나, [[마카베오 전쟁]]을 거쳐 유대인의 왕국 [[하스몬 왕조]]가 세워졌다. <ref name="Roth" />{{rp|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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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
[[파일:1099 Siege of Jerusalem.jpg|
[[636년]] [[동로마 제국]]이 [[정통 칼리파]]에 패배한 이래, [[오스만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패권은 거의 이슬람 국가 밑에 놓이게 된다. [[1099년]] [[제1차 십자군 전쟁]] 시기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국가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지기도 하였으나, [[1187년]] [[하틴 전투]]에서 [[아이유브 술탄국]]에 의해 예루살렘은 다시 점령되어, 1200년 즈음에는 예루살렘 왕국의 세력은 지중해 연안으로 국한되게 된다. 예루살렘 왕국은 [[1291년]] [[맘루크 술탄국]]에게 패하여 멸망하며, [[1517년]]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술탄국을 멸망시키고 이 지역을 지배한다. <ref>[[#イスラエルの情報|イスラエル外務省 『イスラエルの情報』]] pp.22-25</ref>
=== 현대 이스라엘 ===
[[파일:Declaration of State of Israel 1948 2.jpg|
[[제1차 세계 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하여 패전한 [[오스만 제국]]은, 현재의 [[터키]]를 제외한 중동 지역 대부분을 영국과 프랑스에 내주게 되며, 트랜스요르단 (지금의 이스라엘이 위치한 곳. 지금은 [[팔레스타인]]으로 불림) 지역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오스만의 세금 정책에 의해 황무지가 되었던 트랜스요르단은 유대인들과 아랍 유민들이 유입되어 여기저기 공동체 마을들이 형성되었다.
현대 이스라엘은 19세기 [[시온주의]] 운동을 배경으로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러나 [[시온주의]]운동은
[[아랍 민족주의]]에 눈뜨고 있었던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을 말살하였고, 아랍인들의 권리를 철저히 무시하여 아랍인의 원망을 샀다.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과 거주하고 있는 아랍인들에게 '전쟁에서 승리할 시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를 줄테니 그 곳에서 나오라'고 충동했다. 그렇지 않아도 [[튀르키예]]의 억압에 분노를 느끼고 있던 [[후세인]]은 1916년 6월 5일을 기하여 혁명을 일으켜 스스로 아랍의 왕임을 자처했다. 영국군이 트렌스요르단에서 철수하자 충동질 당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아랍 국가들의 요구 처럼 그들의 터전을 떠나 아랍 국가들과 연합하여 전쟁을 일으켰고, 이것이 [[제1차 중동 전쟁]]이다. 유대인들은 [[이르군]]과 [[하가나]] 등 극우 시온주의 민병대를 조직하여 아랍인들을 대상으로 테러와 학살을 하였고, 영국군이 철수하자 이스라엘은 즉각 이스라엘 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하였다. 이것은 [[아랍]]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서방과 미국으로부터의 무기지원을 받아 아랍 연맹을 물리치고 [[제1차 중동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제2차 중동전쟁|제2차 중동 전쟁]](시나이전쟁)과 [[제3차 중동 전쟁|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같은 [[아랍]]국가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을 외래 식민주의자들이 자국의 영토 위에 수많은 동포를 쫒아내고 세운 국가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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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팔레스타인,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시리아, 방글라데시, 요르단, 그리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세력과 예멘의 후티 반정부군 밑 기타 아랍 국가들을 지지 및 지원하고 있어서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으며, 서로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이스라엘] {{웨이백|url=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date=20131004213514 }} 참조.</ref>
최근 르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의 방한 제안을 대한민국 정부가 거절했다고 이스라엘 언론이 보도해서 관계가 악화된 거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언론의 오보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 시리아와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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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 ==
[[파일:Flickr - Israel Defense Forces - Female Soldiers Unload their Weapons.jpg|
이스라엘은 인접 아랍국가들과 팔레스타인과의 잦은 분쟁 때문에 [[징병제]]를 채택한 국가로서 남자와 여자 모두 병역 의무를 지고 있고 병역 기간은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에서 3년 동안 복무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특히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과 [[드루즈교]]를 믿는 사람들은 군에 복무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과는 달리, [[1995년]]부터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를 허용하고 있는데 정부의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야 한다. 본인이 [[이슬람교]] 신자이거나 [[무종교]]인 사람이라면 징집이 되지 않으나 자원입대는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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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
[[파일:Frank-ruehl.png|
[[파일:Annava165.jpg|
[[히브리어]](국민어)와 [[아랍어]]가 [[공용어]]이다.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 표기 방식은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특히, [[히브리어]]는 이스라엘의 국가 언어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약 30년에 걸친 [[영국]]의 신탁 통치와 [[미국]]에서 건너온 많은 이주민의 영향, 정부의 영어 교육으로 [[영어]]도 제2언어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래서 모든 도로 및 공공장소의 표지에는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를 함께 표기한다. 요르단, 이집트, 레바논계 유대인은 [[아랍어]] 사용을 많이 한다. 한편 [[소련]]에서 건너온 유대인도 많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아랍어 다음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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