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 제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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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 (1497-1583) ==
[[파일:Matthew-BristolHarbour-Aug2004.jpg|thumb섬네일|left|[[존 캐벗]]의 제2차 [[신대륙]] 탐험에 동원되었던 함선 ''매튜 호''의 복제품. 캐벗은 매튜 호와 함께 종적을 감추었다.]]
 
=== 종교개혁 이전 ===
 
== 제1제국 (1583-1783) ==
[[파일:Gilbert plaque.jpg|right|200px|thumb섬네일|길버트의 발견을 기념하고자 뉴펀들랜드 주의 세인트존스에 세운 명판.]]
 
1578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험프리 길버트]]에게 바다 건너 새로운 땅의 발견과 답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그해, 길버트는 해적질에 종사하며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수립할 취지로 [[서인도 제도]]를 향해 떠났다. 하지만, 악천후 탓에 원정이 초반부터 실패하고 말았다. 1583년에 그는 [[뉴펀들랜드 섬]]을 언급하면서 아직 아무 이민자들도 없는 이때에 잉글랜드가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다시 한번 항해 도전에 착수하였다. 길버트는 잉글랜드로 귀국하던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뒤를 이어 의붓형제 [[월터 롤리]]가 1584년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특권을 받았으며, 같은 해 오늘날 [[노스캐롤라이나 주|노스캐롤라이나]] 연안에 [[로어노크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 제2제국 (1783-1815) ==
[[파일:Clive.jpg|250px|thumb섬네일|300px|[[플라시 전투]]에서 [[로버트 클라이브]]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영국 동인도 회사의 통상력은 물론 군사력까지 확립되었다.]]
 
=== 동인도 회사의 인도 지배 ===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군은 [[로버트 클라이브]]의 지휘 아래 프랑스군과 그들의 인도인 동맹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이로써 영국은 [[벵골]]의 지배권을 확립하였고, 인도에 더 많은 군사들을 파견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다음 10년간 단계적으로 지배 아래에 둔 영토를 넓혀갔으며,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지방의 꼭두각시 통치자들을 통해서 80%의 비율로 지방 고유의 인도인 용병들([[세포이]])로 구성된 [[인도군]]의 군사력을 장악하였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1857년까지 인도를 다스렸다.
 
[[파일:Yorktown80.JPG|thumb섬네일|left|250px|요크타운에서 항복을 선언한 콘월리스 ([[존 트럼벌]], 1797년)]]
 
=== 아메리카의 13개 식민지 상실 ===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캐나다에 대한 영국의 정책에 영향을 끼쳤다. 독립 전쟁 동안 왕당파가 캐나다에 대규모적 규모로 쇄도하였다. 제국의 권위를 옹호할 의도로 제정한 [[1791년 제헌법]]을 통해 [[어퍼캐나다]](영어권 지역)와 [[로어캐나다]](프랑스어권 지역) 등 두 공동체 사이의 긴장 상태를 진정시켰다. 동시에 미국의 독립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고자 캐나다 정부가 대중을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영국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영국 본국과 비슷한 통치체제를 실시하였다. [[영국령 북아메리카]]의 앞날은 [[나폴레옹 전쟁]] 동안 영국이 대서양 무역의 일부를 강제로 장악하려고 시도한 결과, [[미영 전쟁]] 기간에 잠시 절멸할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북방 국경을 확장할 기회를 잡는 데 실패하였다. 이 전쟁은 현재 영국과 미국 사이에 정식으로 선전포고한 유일한 전쟁으로 남아 있다.
 
[[파일:Captainjamescookportrait.jpg|thumb섬네일|right|200px|[[제임스 쿡]]의 태평양 항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등 몇몇 장소를 영국의 식민지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 태평양 탐험 ===
 
=== 나폴레옹과의 전쟁 ===
[[파일:Sadler, Battle of Waterloo.jpg|thumb섬네일|350px|right|[[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 전쟁]]의 종식과 ''[[팍스 브리타니카]]''의 도래를 알렸다.]]영국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로부터 한 번 더 도전을 받아 전력을 다해 싸웠다. 이 대결은 이전의 전쟁들과는 달리 두 나라 간 이데올로기의 경쟁을 의미한 것이었다. 단순히 영국이 세계무대에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 것만이 아니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유럽 대륙의 수많은 나라를 침략했으며, 이내 영국에도 위협이 임박하였다.
 
[[나폴레옹 전쟁]]은 영국이 승리를 위해 엄청난 양의 자금과 물자를 쏟아부은 전쟁 가운데 하나였다. 프랑스 항구들은 [[영국 해군]]에 의해 봉쇄되었으며, 이는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트라팔가르]]에서 프랑스 함대를 상대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정복 식민지들은 차례대로 공격을 받아 점령되었으며, 1810년 나폴레옹에 의해 합병되었다. 프랑스는 1815년 유럽군들의 연합 공격을 받고 마침내 패배하였다. 대영 제국은 또다시 평화 조약의 수혜자가 되었다. 프랑스로부터는 [[이오니아 제도]]와 [[몰타]](이 둘은 1797년과 1798년에 각각 점유하였음), [[세인트루시아]], [[모리셔스]]를 넘겨받았으며, 스페인으로부터는 [[트리니다드 섬]]과 [[토바고 섬]]을 넘겨받았다. 네덜란드로부터는 [[가이아나]]와 [[케이프 식민지]]를 넘겨받았다. 영국은 프랑스에 [[과들루프]]와 [[레위니옹]]을, 네덜란드에는 [[자와 섬|자바]]와 [[수리남]]을 돌려주었다.
 
== 제국주의 시기 또는 대영 제국의 전성기(1815-1914) ==
[[파일:The British Empire.png|400px|thumb섬네일|대영 제국의 판도]]
1815년부터 1914년까지는 영국 역사에서 “제국의 세기”라고 부르는 기간으로<ref>Hyam, Ronald (2002). Britain's Imperial Century, 1815-1914: A Study of Empire and Expansion. Palgrave Macmillan, 1.</ref><ref>Smith, Simon (1998). British Imperialism 1750-1970. Cambridge University Press, 71.</ref>, 약 2천6백만 제곱킬로미터의 영토와 당시 세계 인구의 1/4에 해당되는 약 4억 명의 인구가 대영 제국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되었다. 나폴레옹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영국에 있어서는 경쟁국이 러시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ref>Porter, Andrew (1998). The Nineteenth Century, The Oxford History of the British Empire. Oxford University Press, 401.</ref> 특히 바다에서 도전받은 적은 절대 없었다. 영국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였는데, 훗날 이때를 가리켜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라고 불렀다.<ref>Porter, Andrew (1998). The Nineteenth Century, The Oxford History of the British Empire. Oxford University Press, 323.</ref> 영국은 식민지 곳곳에 표면적인 지배력을 행사함과 동시에 세계 무역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는데, 이는 [[남아메리카]], [[중국]], [[태국|시암]]과 같이 일부 역사학자들이 “비공식 제국령”으로 묘사한 많은 명의상 독립국의 경제를 사실상 통제했다는 것을 뜻한다.<ref>Porter, Andrew (1998). The Nineteenth Century, The Oxford History of the British Empire. Oxford University Press, 8.</ref>
 
=== 동인도 회사와 아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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