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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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영기 ===
[[파일:CarthageMap.png|thumb섬네일|300px|기원전 3세기 카르타고의 영토.]]
[[기원전 5세기]] 초반 카르타고는 서지중해 일대의 교역 중심지로 변모한다. 카르타고는 [[하드루메툼]], [[우티카]], [[케르코우아네]] 등 옛 페니키아 식민지의 영토와 리비아의 해안지대를 정복, 현재의 [[모로코]]부터 [[이집트]]의 해안지대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지중해 내의 [[사르데냐]], [[몰타]], [[발레아레스 제도]], [[시칠리아]] 서편에까지 지배권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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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에니 전쟁 ===
{{본문|포에니 전쟁}}
[[파일:Hannibal traverse le Rhône Henri Motte 1878.jpg|thumb섬네일|left|[[알프스 산맥|알프스]]를 넘기 전에 [[전투 코끼리]]를 싣고 [[론 강]]을 건너는 카르타고 군대]]
[[제1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64년 ~ 241년) 지중해의 상권을 둘러싸고 점차 팽창하는 [[로마 공화정|로마 공화국]]과 전통적인 해운국이었던 카르타고 사이의 이권 분쟁에서 비롯되었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시칠리아]]를 통해 해상으로 진출하려했고, 결국 시칠리아를 둘러싸고 카르타고와 맞붙었다. 23년 간의 전쟁 끝에 로마는 [[한니발]]의 아버지이기도 한 [[하밀카르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 해군을 격멸시키고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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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망 ===
[[파일:Tunisie Carthage Ruines 08.JPG|thumb섬네일|right|카르타고의 폐허 유적]]
[[기원전 149년]] 로마는 카르타고의 조약 위반에 따른 대가로 수도 카르타고를 버리고 이주하라는 조건으로 카르타고를 압박해왔다. 카르타고 원로원은 이 요구를 현실을 생각해 받아들이려고 하였으나, 카르타고를 버리고 이주하라는 로마의 요구는 카르타고 사람들의 [[직업]]인 [[상업]]을 포기하라는 말이기 때문에 성난 민중이 항쟁을 벌여 결국 묵살하고, 3차 포에니 전쟁에 돌입하였다. 로마는 카르타고와 [[공성전]]을 벌였다. 카르타고 시민들도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활]] 시위로 쓰도록 할 정도로 로마에 거세게 저항했다고 한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끝내기도 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외손자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아프리카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3년에 걸친 공격으로 결국 카르타고 도시를 함락하고, 주민을 완전히 축출했으며, 도시를 불태우고 소금을 뿌려 황무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로마는 살아남은 카르타고 시민들을 아프리카에서 살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