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1번째 줄:
[[파일:Koxinga territory.jpg|280px|right|thumb섬네일|남명정권(정성공)의 영향권]]
 
'''남명'''(南明, [[1644년]] ~ [[1664년]])은 [[명나라]]가 [[1644년]]에 멸망했다고 보는 청사의 입장에서, [[1644년]] 이후에 잔존했던 [[명나라]]를 분리하여 일컫는 말이다. [[후금]]의 세력이 확대되고, 명나라 황제였던 숭정제가 순사(殉社)함으로써, 명나라 황제의 유신(遺臣)들은 명나라 황실을 옹립하여, 남명(南明)으로 남았다.
 
남명의 초대 황제인 [[홍광제]] 주유숭(朱由崧 재위:1644년 ~ 1645년)은 [[건문제]]에게 [[묘호]]를 혜종(惠宗)으로, 시호를 양황제(讓皇帝), [[숭정제]]의 태자인 [[주자랑]]에게는 묘호는 순종(順宗)으로 [[시호]]는 도황제(悼皇帝)로 각각 추증하였다.
 
[[정성공]]은 [[청나라]]의 군대에 쫓기고 화남(華南, 중국 남부)에 도망친 [[융무제]](隆武帝, 이름은 주율건; 朱聿鍵)를 수행(隨行)해, 연평군왕(延平郡王)의 작위를 받고 명나라의 황실 성인 주(朱)씨의 성을 하사받고 국성야(國姓爺)로 불리었다.
 
[[청나라]]가 명나라의 부흥을 목적으로 한 이 정권마저 제압하여 [[중국 대륙]]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1650년 청군이 중국 남부 경동과 구이린을 함락시키고 1656년 [[저우산 시|주산열도]]를 점령하였다. 1659년 운남까지 차지하자 영명왕은 버마로 도주했지만, 1662년 청나라에 투항한 [[오삼계]]가 [[버마]]까지 쳐들어와 영명왕을 살해하였다. 그러자 비정통 황제인 평종(平宗) [[정무제]](定武帝)가 계속해서 저항하였지만, [[1664년]]에 정무제가 사망하자 이로써 명나라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1724년 [[명나라]]의 번국인 대국(代國) 대간왕(代簡王) 주계(朱桂)의 12대손이자 대왕(代王) 주이(朱彝)의 손자였던 [[주지련]](朱之璉)이 청나라 [[옹정제]]로부터 1등 연은후의 작위를 받고, 이후 이 자손은 명나라 황실의 제사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