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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0-1790(아이젠슈타트에서 에스테르하지) ===
[[파일:Fertőd - The Eszterházy Castle or Palace.jpg|thumb섬네일|230px|에스테르하지의 전경]]
1761년,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후작 가문의 부악장으로 취임하자 초기의 교향곡군이 탄생되었다. 1761년의 표제가 붙은 3부작(제6번 <아침>, 제7번 <낮>, 제8번 <저녁>)으로 대표되는 초기의 [[교향곡]]에는 [[바로크 음악|바로크]]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1770년경의 이른바 '[[슈투름 운트 드랑]]'시기에 이르자 급격히 표현력이 심화하여 [[클라비어]] [[소나타]], 현악4중주, 교향곡 등에 현저한 발전의 자취가 새겨진다. 종래의 클라비어 소나타는 디베르티멘토풍의 경쾌한 성격이었으나 하이든은 [[엠마누엘 바흐]]의 '[[감정과다양식]]'의 풍부한 표현력이나 클라비어 협주곡의 견고한 구성을 소나타에 이식하여 소나타를 교향적인 것으로 하였다. 현악4중주도 디베르티멘토풍의 성격을 배제, 4악장 구성을 원칙으로 하여 고전파의 현악4중주 구조와 정신이 확립되었다. 여기서는 [[푸가 형식]]이 악장에 채택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의 교향곡에도 새로운 양식에 대한 의욕을 볼 수 있으며 [[단조]]의 채용, 힘찬 리듬적 충동에 의한 표현의 심화가 꾀해지고 있다. 1781년은 하이든이 전적으로 새로운 특별한 방법으로 작곡하였다고 자칭한 <러시안 4중주곡>이 소나타 형식을 실내악의 분야에도 확립한 것으로 의의가 깊다. 1783-1784년의 교향곡(제76번-81번)에는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특징이 보이나, 한편 모차르트도 1782년부터 1785년에 작곡한 6곡의 현악4중주곡을 하이든에게 바쳐 선배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1780년대 후반에는 하이든의 명성이 전유럽에 퍼져 외국으로부터의 작곡 의뢰가 늘어났다. 그리고 1786년에는 파리의 관현악단 콘세르 드 라 로쥬 올람피크로부터의 교향곡 6곡(제82번-87번)의 작곡의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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