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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lag_of_North_Vietnam_(1945-1955).svg|thumb섬네일|비엣민의 깃발]]
'''비엣민'''({{vie|v=Việt Minh|hn=越盟|eum=월맹}})은 '''베트남 독립동맹회'''({{vie|v=Việt Nam Ðộc Lập Ðồng Minh Hội|pr=비엣 남 독 럽 동 민 호이|hn=越南獨立同盟會}})의 약칭이다. [[1941년]] [[호찌민]]을 중심으로 [[인도차이나 공산당]]과 다수의 베트남의 민족주의 계열 정당의 동맹으로 결성되었다. 비엣민의 당면 목표는 [[프랑스]]로부터 [[베트남]]의 독립을 쟁취<ref>베트남은 [[1887년]] 이래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다.</ref> 하고 [[일본 제국]]에 저항하는 것이었다.<ref>
윌리엄 J. 듀이커, 정영목 옮김, 《호치민평전》, 푸른숲, 375 ~ 379 쪽, {{ISBN|89-7184-375-6}}.</ref> 비엣민(베트민)은 [[1945년]] 일본 패망 후 [[프랑스]]가 다시 꼭두각시로 세워놓은 [[바오다이]] 황제의 [[베트남국]]을 무너뜨리고 [[베트남]] 북부 지역을 빠르게 점령하여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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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인도차이나 전쟁 ==
{{본문|1차 인도차이나 전쟁}}
[[파일:Tượng Trận Hà Nội 1946.jpg|thumb섬네일|하노이의 승전 기념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몇달이 지나자 [[중화민국]]은 [[일본제국]] 패잔병의 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하노이에 입성했다. 또한 장 에땅 발루이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도 하노이 부근에 주둔하였다. 군사적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비엣민과 [[중화민국]]군, 프랑스군은 삼자 협약을 맺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원으로서 베트남의 독립 인정과 프랑스군 및 중국군의 철군에 합의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1947년 프랑스군은 하노이를 포위 공격하여 점령였다. 그러나 1949년까지 프랑스는 비엣민을 이길 수 없었고 산발적인 교전이 계속되었다. 한편 [[1949년]] 이후에는 공산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고 이 기간에 중국은 비엣민에게 은신처와 무기를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