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터그라이풍: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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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undesarchiv Bild 146-1972-026-11, Machtübernahme Hitlers.jpg|thumb섬네일|320px|1933년 1월 30일, [[수상관저]]에 서 있는 아돌프 히틀러.]]
{{나치즘}}
'''마흐터그라이풍'''({{llang|de|Machtergreifung}}, {{IPA|ˈmaxtʔɛɐ̯ˌɡʁaɪfʊŋ|-|De-machtergreifung.ogg}})은 독일어로 "권력 장악"을 뜻한다. 이 단어는 보통 1933년 1월 30일 [[민주주의]] [[의원 내각제]]인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국가사회주의]]의 [[나치당]] 당수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권력을 장악한 날을 뜻하는 데 사용한다. 이날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당수 아돌프 히틀러를 [[독일의 총리]]로 취임시켰고 이로써 [[나치 독일]]의 일당독재 정치체제로 바뀌었다.
 
== 전개 ==
[[파일:Reichstag members 1933 memorial.jpeg|thumb섬네일|left|베를린 의회 건물의 기념비. 각각의 96개 판은 나치가 살해한 96명의 독일 국회의원을 상징한다.]]
나치는 1923년 11월 9일 실패한 [[뮌헨 폭동]]의 실패점을 배우고, 히틀러의 변호사이자 조언가인 [[한스 프랑크]]는 형식적, 그리고 공공연히 법률을 따르면서 국가 권력을 탈취하기 위한 "국가 혁명"으로 가기 위해 Legalitätsstrategie(적법성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한다. [[1930년 독일 총선거]]에서 나치가 큰 지지율을 받은 이후, 총리인 [[독일 중앙당]]의 [[하인리히 뷔링]]은 [[바이마르 헌법 48조]]를 통한 긴급 법령으로 [[독일 사회민주당]]가 지지하는 소수 정부를 통해 독일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는 나치의 돌격대와 [[친위대]]를 금지시켰지만, 곧 대통령 힌덴부르크와 국방장관 [[쿠르트 폰 슐라이허]] 주위에서 우익의 압력으로 1932년 금지 명령을 취소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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