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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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ailroad bridge at No Gun Ri, South Korea.jpg|thumb섬네일|250px|사건의 현장였던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경부선 철도교]](2008년 11월 촬영). 당시 [[탄환]]의 흔적이 남아 있다]]
[[파일:Map of NoGeunRi.png|right|thumb섬네일|250px|노근리]]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老斤里 良民 虐殺 事件, {{llang|en|No Gun Ri Case}})은 [[한국 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1 기병 사단 (미국)|미국 1 기병 사단]] [[7 기병 연대]] 예하 부대가 1950년 7월 25일 ~ 7월 29일 사이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서 폭격과 [[기관총]] 발사를 시작하여, 민간인 피난민 속에 북괴군들이 잠입했다고 보고받고 [[처리]]한 [[사건]]이다.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은 대부분 북한 인민군 요원들로 판단하고, 이에 따라 사격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근리 사건을 실제 경험했던 생존피해자와 유족들인 정은용, 정구도, 양해찬, 정구호, 서정구씨 등으로 1994년에 구성된 노근리 사건 대책위원회(위원장 : 정은용)에서는 사망자 135명,부상자 47명 모두 182명의 희생자를 확인했으며, 400여명의 희생자가 대부분 무고한 양민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20여명이다.<ref>{{뉴스 인용 |url=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159.html |제목=진실만을 캐라. 진실을 |출판사=한겨레 21}}</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