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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partheidSignEnglishAfrikaans.jpg|thumb섬네일|300px|백인전용을 알리는 아파르트헤이트 표지판]]
 
'''아파르트헤이트'''({{llang|af|Apartheid}})는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정권에 의하여 [[1948년]]에 법률로 공식화된 [[인종 분리 정책|인종분리]] 즉,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정권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정책을 말한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벌인 남아공 백인정부와 흑인대표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와 [[넬슨 만델라]] 간의 협상 끝에 급속히 해체되기 시작해, 민주적 선거에 의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넬슨 만델라]]가 [[1994년]] [[4월 27일]] 완전 폐지를 선언하였다.
2차 세계대전중에 당시 총리인 얀 스뮈츠와 집권 연합당은 엄격한 인종분리정책의 강제를 완화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연합당의 정책이 점진적으로 서로 다른 인종간의 동화를 촉진하고 말것이라는 두려움이 기득권 백인 사이에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소어 위원회가 이 문제에 대해 설치되었고, 이러한 정책은 모든 인종집단의 존재상실로 이어진다고 단언했다.
 
[[파일:DurbanSign1989.jpg|thumb섬네일|right|260px|영어,아프리칸스어,줄루어로 표시된 소 아파르트헤이트 표지판(1989)]]
아파르트헤이트의 실행은 많은 점에서 초기 분리주의자들의 정책과 행정적 특징들을 유지하고 있다. 일례로 [[1913년]]에 재정된 토지법과 컬러바와 같은 많은 작업장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아파르트헤이트를 만들어낸 학자인 [[베르너 아이젤렌]]은 인종분리와 백인우위가 그때까지의 방식으로는 더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주장했다. [[1948년]]에는 정치적 분할정책으로서의 아파르트헤이트는 완전한 인종분리에 비해 유리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즉, [[흑인]]과 [[백인]]이 하나의 국가의 한 국민으로 묶여 있는 한 소수백인에 의한 지속적인 흑인분리 및 통제는 비용이 많이들고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에 백인국가와 흑인국가로 분할해 버리자는 것이다. 이 두정책은 정치적 분할(대(大) 아파르트헤이트)과 인종분리(소(小) 아파르트헤이트)로 구분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치인은 [[헨드릭 페르부르트]]이다.
 
 
=== 대 아파르트헤이트 (홈랜드 시스템) ===
[[파일:Southafricanhomelandsmap.png|right|250px|thumb섬네일|홈랜드의 위치]]
[[파일:Ciskei2.jpg|thumb섬네일|right|250px|홈랜드(반투스탄)의 하나인 치스케이의 농촌지역]]
{{본문|반투스탄}}
소위 분리발전정책은 베르부어드 박사가 1958년에 권력을 획득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분리발전의 초석으로서 홈랜드 시스템의 구축을 구상하게 된다. 베르부어드는 이 홈랜드들에 궁극적으로 독립을 부여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백인 남아공과 홈랜드의 산업시설과 반투투자법인이 홈랜드의 발전과 고용을 위해 추진되었다.(궁극적으로 흑인을 백인 남아공에서 축출하기 위해) 박사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 해결책으로, 원주민들과 다른 백인들이 모두 네덜란드나 본국으로 돌아가면 해결된다는 생각을 끝까지 숨기려고 망상을 동원해서 별의별 궁리를 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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