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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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황신덕.gif|thumb섬네일|200px|황신덕]]
 
'''황신덕'''(黃信德, [[1898년]] ~ [[1983년]] [[11월 22일]])은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교육자, 사회운동가, 여성운동가이며, [[대한민국]]의 교육자, 여성운동가이다. 본관은 [[제안 황씨|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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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부터 [[1940년]]까지 《[[동아일보]]》 의 기자와, [[동아일보사]]의 여성잡지 <신가정>의 기자로 재직했다. [[1940년]] [[10월 10일]]부터는 [[박찬주]]<ref>운현궁의 종주 이우의 부인</ref> 와 남편 임봉순(任鳳淳) 등의 후원으로 설립한 [[중앙여자고등학교|경성가정의숙]](京城家庭女塾) 교장을 지내면서는 [[일본 제국|일제]]의 전시 체제에 적극 협력했다. 당시 부교장은 [[박순천]]이었다. 당시 학교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일본]]까지 갔던 그를 만난 [[이우]]는 흔쾌히 [[운현궁]] 근처의 부지를 그에게 기증해주었다.
 
[[파일:1940 경성가정의숙 교직원 사진.jpg|thumb섬네일|200px|[[1940년]]의 [[경성가정의숙]] 교직원 사진<br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황신덕)]]
 
[[1938년]] 일제의 국방 헌금 모금운동에 참여하였고,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후생부 위원, [[조선임전보국단]] 여성부문 평의원으로 친일 단체에도 가입했다. 조선임전보국단에는 [[김활란]], [[모윤숙]], [[박인덕]] 등이 여성 평의원으로 참가했다. 황신덕은 이들과 함께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를 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매일신보]]》와 같은 친일 매체에 친일 기고문을 싣거나 좌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1943년]] 제자들을 정신대로 보냈다는 의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