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중화민국 관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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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이후 ===
[[파일:12.22 總統接見駐臺北韓國代表部新任代表楊昌洙時,握手致意 31648443572 f06aeb5175 o.jpg|thumb섬네일|250px|2016년 12월 22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양창수 (외교관)|양창수]] 주 타이베이 한국대표부 신임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1992년 8월에 [[대한민국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할 것임을 전격적으로 발표하자, [[중화민국]]은 [[대한민국 외무부]]에 정식으로 항의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는 단절되었다. 단교 직후 양국의 민간 교류도 일시적으로 냉각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l.newsbank.com/nl-search/we/Archives?p_product=NewsLibrary&p_multi=BBAB&d_place=BBAB&p_theme=newslibrary2&p_action=search&p_maxdocs=200&p_topdoc=1&p_text_direct-0=0F97E653B955AE18&p_field_direct-0=document_id&p_perpage=10&p_sort=YMD_date:D&s_trackval=GooglePM|work=Yonhap News|date=2002-08-21|accessdate=2008-02-05|title=South Korea-Taiwan relations 'in a rut'}}</ref> 서울과 [[타이베이]]를 오가던 정기 여객기의 운행이 중단되고 당분간 전세기 편이 대체운항하였다. 정기 여객기 중단으로 1992년 42만명에 이르던 관광객수는 이듬해에 20만명으로 급감하였다가, 2003년에는 36만명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1993년에 [[서울특별시]]에 [[타이베이 대표부]]가, 2005년에 [[부산광역시]]에 사무처가 개설 되면서 [[산업]], [[무역]] 분야에서는 교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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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회담 ==
[[파일:Korea Dignitaries.jpg|thumb섬네일|250px|장제스와 이승만, 진해 (1949년 8월)]]
[[파일:장개석 이승만 1953.png|thumb섬네일|250px|이승만 대통령이 대만을 방문, 장개석 총통의 영접을 받고 있다. (1953년 11월 27일)]]
1949년 8월 [[중화민국의 총통]] [[장제스]]가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이승만]]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과 [[경상남도]] [[진해]](현 [[창원시]])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1953년 11월 이승만이 [[타이완]]을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