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안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시각 편집 m 모바일 웹
천황👉일왕
태그: 시각 편집 m 모바일 웹
3번째 줄:
'''헤이안 시대'''({{llang|ja|平安時代|へいあんじだい|헤이안지다이}}, [[794년]]~[[1185년]])는 [[794년]] [[간무]] 일왕이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한 것으로부터, [[가마쿠라 막부]]의 설립까지의 약 390년간을 지칭하는 일본역사의 시대구분의 하나이다. [[교토 시|교토]]에 세워진 [[헤이안쿄]]가 가마쿠라 막부가 설립될까지 정치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헤이안 시대라고 한다.
 
나라 시대에 율령정치가 시작되어 헤이안 초기에는 [[일본 일왕천황|일왕]]의 통치가 이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 승려의 세력이 커지면서 [[후지와라씨]] 정권에 의한 부패가 횡행했다. 정치에 불만을 가진 하급귀족의 반란이 일어나고 도적들이 설치는 시대가 되고 있었다. 이들을 제압하려 커진 정치세력이 무사 계급이다. 귀족들을 대신해 무사의 정치가 시작되었고, 이런 상황은 가마쿠라 막부부터 에도 막부시기까지 700년동안 이어졌다.
 
일본 역사상 [[모노노케]], [[음양사]]를 비롯한 미신이 크게 성행한 시대이다.
12번째 줄:
왕조국가 체제하에서는 국가에서 토지경영이나 백성을 지배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유력한 백성(다토(田堵), 묘슈(名主))층의 성장이 나타나며, 그들의 통제하기 위한 이 권력위임과 병행하여, 국가에서 군사경찰권을 위임받은 군사귀족층과 무예전문 하급관리 층도 또한 [[사무라이|무사]]로서 성장하였다. 국가권한의 위임과 이에 의한 중앙집권의 지나친 부담의 경감에 의해 중앙정계에서는 정치가 안정되고, 관직이 특정 가업을 담당하는 가계에 세습되는 현상이 진행되어 귀족의 최상위에서는 [[셋칸케]](摂関家)가 확립되었고, 중류귀족에 고정된 계층은 중앙에서는 가업의 전문기능 에 따라 공무를 담당하는 기능관인으로서 행정 실무를, 지방에서는 수령이 되어 지방행정을 담당했다([[헤이안 귀족]]). 이 시기는 셋칸케에 의한 [[셋칸 정치]]가 전개되었고, 특정 [[권문]](権門)이 독점적으로 징세권을 얻는 [[장원]](荘園)이 시대가 지남에 따라 단계적으로 증가하여 수령이 징세권을 담당하는 공령(公領)과 함께 세력이 둘로 나뉘었다.
 
[[11세기]] 후반부터는 [[태상천황|태상일왕]](太上天皇)이 [[지텐노키미]](治天の君)가 되어 정무를 돌보는 [[인세이]](院政)가 시작되었다. 인세이의 시작이 중세의 시작이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인세이 시기에는 장원의 일원영역적(一円領域的)인 집적과 [[고쿠가료]](国衙領)의 징세 단위화가 진행되어, [[장원공령제]]라고 불리는 체제로 이행하게 된다. [[12세기]] 중반엔 귀족사회 내부의 분쟁을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하게 되어, 이에 동원된 무사의 지위가 급속히 상승하였다. 이러는 중에 최초의 무가정권(武家政権)인 [[다이라씨]] 정권이 등장하지만, 이 시기의 사회적 모순을 혼자 도맡았기 때문에 얼마 안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국에 확대된 내란에 의해 붕괴되고 만다. 다이라씨 정권의 붕괴와 함께 중앙정부인 조정과는 별개로 내란을 수습하여 [[도호쿠]]의 지배권을 얻은 [[가마쿠라 막부]]가 등장하여 헤이안 시대는 막을 내렸다.
 
== 외교 ==
18번째 줄:
 
== 연표 ==
* [[784년]]([[엔랴쿠]] 3년) [[간무 천황|간무 일왕황]], [[나가오카쿄|나가오카쿄(長岡京)]] 건설 개시
* [[785년]](엔랴쿠 4년) 나가오카쿄의 건설 책임자인 후지와라노 다네쓰구(藤原種継) 암살, 용의자로 지목받은 황태자 사와라(早良) 친왕(親王) 폐위
* [[787년]](엔랴쿠 6년) 나가오카쿄로 천도
46번째 줄:
* [[1051년]]([[에이쇼 (1046년)|에이쇼]] 6년) [[전구년의 역|전(前)9년의 역(役)]] 시작
* [[1062년]]([[고헤이]] 5년) 아베노 사다토 패사, 전9년의 역 종결
* [[1068년]]([[지랴쿠]] 4년) [[고산조 천황|고산조(後三條) 천황일왕]] 즉위, 셋칸 정치 시대 폐막
* [[1072년]]([[엔큐]] 4년) 국가에서 공인된 도량형 규격의 단위를 확정한 《엔큐젠지마스(延久宣旨枡)》를 제정하다.
* [[1083년]]([[에이호]] 3년) [[후3년의 역|후(後)3년의 역]] 시작
* [[1086년]]([[오토쿠]] 3년) [[시라카와 천황|시라카와(白河) 상황]], [[태상천황|태상일왕]]으로서 [[인세이|인세이(院政)]]를 개시
* [[1087년]]([[간지]] 원년) 후3년의 역 종결.
* [[1108년]]([[가쇼 (1106년)|가쇼]] 3년) 다이라노 마사모리(平正盛), 미나모토노 요시치카(源義親)를 토벌하다(미나모토노 요시치카의 난)
* [[1111년]]([[덴에이]] 2년) 기록장원권계소(記録荘園券契所) 설치
* [[1129년]]([[다이지]] 4년) 시라카와 법황 사망, [[도바 천황|도바(鳥羽) 상황]]이 상황이 되어 인세이 개시
* [[1156년]]([[호겐]] 원년) 도바 법황(法皇) 사망, [[고시라카와 천황|고시라카와(後白河) 천황일왕]]과 [[스토쿠 천황|스토쿠(崇德) 상황]] 사이의 무력충돌에서 천황측이 승리하다([[호겐의 난|호겐保元의 난]]).
* [[1159년]]([[헤이지]] 원년) [[헤이지의 난|헤이지(平治)의 난]]
* [[1167년]]([[닌난]] 2년) [[다이라노 기요모리|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 [[다이조다이진|다이조다이진(太政大臣)]]에 취임(헤이케 정권)
61번째 줄:
* [[1180년]](지쇼 4년) 황족 모치히토왕(以仁王)이 전국의 겐지들에게 내린 헤이케 타도의 영지(令旨)에 호응해, 이즈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 시나노에서 미나모토노 요시나카(源義仲) 등이 연이어 거병하다.([[겐페이 전쟁]]의 시작)
* [[1181년]](지쇼 5년/[[요와]] 원년) 다이라노 기요모리 사망. 고시라카와 법황의 인세이 재개, 요와(養和)의 기근
* [[1183년]]([[주에이]] 2년) 다이라 일문이 교토를 버리고 서국으로 후퇴하고, 미나모토노 요시나카가 교토로 들어오다. [[고토바 천황|고토바(後鳥羽) 천황일왕]] 즉위.<br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도고쿠 지역의 지배권을 조정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인정받다(주에이 2년 10월 선지).
* [[1184년]](주에이 3년/[[겐랴쿠 (12세기)|겐랴쿠]] 원년) 미나모토노 요시나카가 요리토모의 동생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요시쓰네(義經)]]에게 패하여 전사하다.<br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가마쿠라에 몬쥬쇼(問注所)·구몬쇼(公文所) 설치
* [[1185년]]([[겐랴쿠 (12세기)|겐랴쿠]] 2년/[[분지 (연호)|분지(文治)]] 원년) [[단노우라 전투]]로 헤이케 멸망. 교토 조정과 가마쿠라 사이의 교섭 끝에, 각 지방에 [[지토|지토(地頭)]]·[[슈고|슈고(守護)]]의 설치가 이루어짐(분지의 칙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