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남북정상회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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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로, 두 당국의 대표가 처음으로 만난 회담이다. [[김대중]]은 이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와 생애 전반에 대한 공로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 발표 전에 현대그룹에서 북한에 [[대북송금 사건|4억 5천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의혹이의혹]]이 제기되어 2003년 대북송금특검이 도입돼 수사를 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20672 <대북송금특검 및 정몽헌회장자살사건>] 한국근현대사사전, 한국사사전편찬위원회, 2005년 09월 10일 출간, 2012년 05월 24일 확인</ref> [[2003년]] 대북송금 [[특검법]]에 의한 특검팀 수사결과 "현대그룹이 북한에 송금한 돈의 액수는 총 5억 달러이며 이 중 5000만 달러는 현물로 보내졌다"고 발표하고 "5억 달러 중에는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김대중 정부가 북측에 건네기로 약속한 정책 자금 1억 달러가 포함돼 있다"라고 밝혔다.
 
현대 상선이[[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 달러는 2000년 6월 9일 북한의 대성은행의 계좌 (중국 마카오 지점) 으로 송금되었으며 현대전자와 현대건설이 조달한 2억 5000 만 달러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김정일 비밀계좌로 송금되었다고 진술된 기록이 공개되었다.
 
김정일은 정권유지에 대한 압박감에 [[미국]]을 의식했고,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는 주장도 있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미국을 두려워한 김정일이 미국의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의 편지를 받고 무척 기뻐했다고 말했다.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전해준 서한을 받고 [[빌 클린턴]]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고 하며, 올브라이트가 방북할 때 아리랑 공연 등의 잔치를 벌였다.<ref>[[프랑스]] 방송 제작 <긴급입수 김정일, 금지된 과거> [[KBS]] 2011년 3월 4일 방송</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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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의장대]] 사열식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판례는 계속 반국가단체라고[[반국가단체]]라고 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반국가단체를 폐기하고 정식국가를 인정하는 공식적인 외교행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1993년 7월 29일 [[92헌바48]] 판결에서 북한이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대남적화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자유민주체제의 전복을 획책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는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고 하여 정식국가라는 점을 부인하였는데, 2018년 현재에도 그 판례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대법원도 같다.
 
국회도 [[국가보안법]]이 주적인 정식국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와 관련한 처벌만을 규정하고 있는데,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정식국가를 인정한 점을 전혀 반영하여 개정하지 않고 있다. 각종 형사판례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의 피고인은 북한이 반국가단체가 아니어서 국가보안법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2018년 현재에도 그러한 주장은 일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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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2차 남북정상회담]]
* [[2018년 3차 남북정상회담]]
* [[대북송금 사건]]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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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햇볕정책]]
[[분류:정상회담]]
[[분류:대한민국의 범죄]]
[[분류:200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