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2세 드 쿠르트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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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llang|fr|Pierre de Courtenay}}, ? - ~[[1219년]])은 1216년부터 1217년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라틴 제국]]의 황제였다. 그는 [[루이 6세]]의 손자이다.
 
피에르는 첫번째첫 번째 결혼으로 영지를 얻고 두번째로는두 번째로는 [[라틴제국의 보두앵 1세]]와 [[라틴제국의 앙리|에노의 앙리]]의 여동생 [[플랑드르의 욜란다]]와 결혼했다. 그는 사촌 [[프랑스의 필리프 2세|필리프 2세]]를 따라 [[제3차 십자군]]에 원정했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알비 십자군]]에 참여했다.
 
[[1216년]] 라틴제국의 황제인 앙리가 후사없이 죽자 그는 라틴 제국의 황제로 추대되었다. 당시 프랑스에 머물던 피에르는 [[1217년]] 그리스로 떠났는데, 로마에서 [[교황 호노리오 3세]]에 의해로부터 로마 성벽바깥에서성벽 바깥에서 대관식을 받았다. 교황은 그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뤄주면 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서방황제]]의 지위도 요구할 것이 두려웠다. 그는 [[베네치아 공화국|베네치아]]로부터 배를 빌려 베네치아 함대와 병력 5500명과 함께 알바니아의 [[두라초]]를 점령하기 위해 출발했으나 두라초 정복에 실패하고 육로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군했다. 그는 알바니아 산맥에서 [[에피루스 공국]]의 [[테오도루스 콤네누스 두카스]]의 군대에 사로잡혀 감옥에 갇혔고 곧 죽은 것으로 보인다.
 
라틴 제국의 제위는 해로를 통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그의 아내 [[플랑드르의 욜란다|욜란다]]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