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 (192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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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거사 직전 [[1942년]] 초에 참여자인 김창흠(金昌欽)이 [[일본]][[헌벙]]에 잡혀서 [[흑백당]]조직이 탄로나, 수배되었다. 흑백당 단원들이 수배자가 되면서 [[한국 광복군]]에 가담하기로 결정하고 해산, 산발적으로 2,3명씩 조를 나누어 각각 다른 길을 거쳐서 국외로 출국 [[만주]]의 [[신경]]으로 떠났다. 그러나 총독부 형사의 추적으로 [[1944년]] [[1월]] [[신경]]에서 검거되고, [[베이징]], [[봉천]], [[신경]] 등지에서 잡힌 다른 동지들과 함께 송환, [[대전형무소]]에 투옥되었다. 대전형무소 투옥 중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8월]] 대전형무소 수감 도중 8.15 해방으로 풀려났다. 해방 당시에는 생존해 있었으나 이후의 행적은 미상이다.
 
[[1968년]] [[3월 23일]]에 사망했다. [[1977년]] [[11월 30일]] 기타 훈격으로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당시에는 생존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8월]] 애국장이[[건국훈장|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