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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
앙 기모띠고려고려 왕조는 [[고려 광종|광종]] 때에 이르러 대대적인 왕권 강화가 이뤄진다. 광종 즉위 당시 고려는 출신에 따라 의복도 달라 색이나 특징조차 구분된 것이 없는 상태였다. 이에 따라 광종은 과거제 시행 2년 뒤, 보라색, 붉은색, 연두색, 자주색 네 종의 소매 색깔을 규정했다.<ref>최범서, 《이야기 고려왕조사》, 청아출판사, 1996년, 24쪽</ref>
 
다른 나라의 의복이 한복에 미친 영향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거나 피상적이었지만 몽골의 경우만이 이례적으로 큰 영향을 미쳐 한복에 시각적인 변화를 실증적으로 일으켰다. [[고려]]가 13세기 [[몽골 제국]]과 부마국의 관계를 맺게 되자 몽골 공주가 고려 왕실로 오게 되었고 몽골 의복이 고려 궁중 복식에도 일부 반영되어<ref>[http://uriculture.com/s_menu.html?menu_mcat=100540&menu_cat=100001&img_num=sub1 UriCulture.com] {{웨이백|url=http://uriculture.com/s_menu.html?menu_mcat=100540&menu_cat=100001&img_num=sub1 |date=20110717173525 }}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의복연구소 2011-08-15 검색해봄.</ref> 넓은 고름이 쓰이면서 허리춤에 혁띠를 묶는 것을 대신하였다. [[원나라]]의 내정 간섭 영향은 왕후와 후궁, 귀족들의 의복에도 변화를 야기했다.<ref>김기선 〈Information about Mongolian pigtail 몽골의 辮髮에 대하여〉, The Institute of Asian Ethno-Forms and Culture, 2005, v. 5, 81-97쪽</ref><ref>{{웹 인용 |url=http://www1.chinaculture.org/library/2008-01/28/content_28414.htm |제목=ChinaCulture.org |확인날짜=2015년 3월 22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1124213026/http://www.chinaculture.org/library/2008-01/28/content_28414.htm |보존날짜=2014년 11월 24일 |깨진링크=예 }}</ref> 그러나 원나라의 복식 자체가 한복의 원형에 영향을 끼쳐 발전 요소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 증거로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와 조선 시대로 지나면서 길이가 갈수록 짧아진 저고리를 살펴볼 수 있다. 백성들 모두가 입었던 저고리가 만약 원나라의 한시적인 영향 하에서 변형되었다면 그 길이는 조선 시대에 이르러 길어져야 하지만 저고리의 길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고 치마의 길이나 모습도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