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67번째 줄:
 
::* [[이세 헤이시]](헤이케)
::: 구니카의 자손인 고레히라(維衡)에서 비롯된 일족이 이세 헤이시(伊勢平氏)이며, 헤이시 가운데서도 이세 헤이시, 특히 [[다이라노 마사모리]](平正盛)의 계통(로쿠하라류六波羅流・로쿠하라케六波羅家)을 '헤이케(平家)'라 부른다. 마사모리의 아들인 [[다이라노 다다모리|다다모리]](忠盛)가 처음으로 승전(昇殿)을 허락받고, 다다모리의 아들인 기요모리는[[다이라노 기요모리|기요모리]]는 [[헤이시 정권을정권]]을 수립하여 번영을 누렸으나, [[단노우라 전투]](壇ノ浦の戦い)에서 멸망하였다.
 
::: 이밖에 고레히라의 자손으로는 [[무로마치 시대]]에 유력한 막부 신하였던 이세 씨[[이세씨]](伊勢氏)가 있는데, 1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 때 만도코로집사(政所執事)를 지낸 [[이세 사다타카]](伊勢貞孝)는 막부 정치를 독점하다 미요시 씨[[미요시씨]](三好氏)와 대립하여 전사하고, 사다타카 사후 이세 씨는이세씨는 힘을 잃었지만 [[에도 시대]]에 [[하타모토]](旗本)로서 이어졌다. 또한 이세 씨의이세씨의 방계인 [[호조 소운|이세 모리토키]](伊勢盛時)는 [[이즈 국|이즈]](伊豆) · [[사가미 국|사가미]](相模)를 평정하고 [[센고쿠 다이묘]](戰國大名) [[고호조 씨고호조씨|오다와라 호조 씨호조씨]](小田原北條氏)의 시조가 되었다.
 
::* 헤이케의 도망자(落人)
::: [[단노우라 전투]] 이후 일본 각지에 흩어져 숨어 살았던 「헤이케의 도망자(平家落人)」의 자손을 자칭하는 무가는 오늘날 일본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데, 대표적으로 [[사쓰마 국|사쓰마]](薩摩)의 다네가시마 씨[[다네가시마씨]](種子島氏)와 [[쓰시마 국|쓰시마]](對馬)의 [[소 씨]](宗氏), [[오와리 국|오와리]](尾張)의 오다 씨[[오다씨]](織田氏)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진짜 다이라 씨의 자손이라기보다는 그 다이라 씨를 섬겼던 가신들의 후손이라고 불러야 옳지만(오다 씨에 대해서는 후지와라 씨라는 설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세 헤이시 즉 헤이케를 섬긴 가신들은 다이라 씨뿐 아니라 다른 성씨 출신의 사람까지 모두 일괄해서 '헤이케'라 부르기도 했다는 점에서 '헤이케의 도망자'라는 단어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 [[구마모토현]](熊本県)의 고카노쇼(五家莊)이나 [[도야마현]](富山縣)의 [[고카야마]](五箇山) 등은 이들 헤이케의 도망자들이 숨어든 곳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헤이케의 '몰락 무사(落武者)' 및 그 가족, 부하들이 숨어들었다고 전하는 땅은 통칭 '헤이케타니(平家谷)'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