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십익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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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십익건'''(拓跋什翼犍)은 [[대나라]]의 군주(재위:338년~376년)였다. 시호는 소성(昭成)이며 연호는 건국(建國) 338년~376년 을 사용하였다.
 
그는 선비족 索頭部 출신으로 탁발울률(拓跋鬱律)의 차남으로 318년 태어났다.
처음에는 [[후조]]의 황제 [[석호]]에게 인질이 되었다. 탁발예궤의 유언에의해 대왕(代王)에 즉위하였다.
 
흉노의 유호와 대치하는 시대가 이어지다가 유호가 죽고 아들 유무환(劉務桓)이 화의를 신청하여 화의를 하였다.
 
363년 고차(高車)를 파괴하고 다수의 포로와 가축을 얻었다. 그러나 376년 전진에 패하였다. 군을 인솔하여 양산의 북쪽으로 달아나다가 고차 각부가 차례로 반란하고 서장자 탁발(拓跋寔君)에의해 살해되었다.
 
탁발십익건(拓跋什翼健)의 시기 [[전진]](前秦)에게 멸망당했다. 십익건의 손자 [[탁발규]](拓跋珪;도무제(道武帝))는 전진이 [[비수의 전투]]에서 대패하여 쇠퇴한 시기를 틈타 386년 [[대나라]] 왕을 칭하고 자립했다. 이후 1년후 국호를 위나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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拓跋什翼犍の即位に際しては後趙の人質となっている拓跋什翼犍の返還が困難であるとの理由群臣の反対があり高涼王拓跋孤を推挙する動きがあったが、拓跋孤が鄴に向かい自らが人質となることを申し出て拓跋什翼犍の返還を迫った。石虎は拓跋孤の気概に感心し二人とも返還したと史書は伝える。
 
こうして338年、繁畤(現在の山西省混沌県)にて拓跋什翼犍は即位、元号も建国と改めた。 339年には百官を設け国家体制を整え、340年には雲中の盛楽(現在の内蒙古自治区和林格爾県)に遷都し盛楽城を築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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