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십익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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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의 유호와 대치하는 시대가 이어지다가 유호가 죽고 아들 유무환(劉務桓)이 화의를 신청하여 화의를 하였다.
 
363년 고차(高車)를 파괴하고 다수의 포로와 가축을 얻었다. 그러나 376년 전진에 패하였다. 군을 인솔하여 양산의 북쪽으로 달아나다가 고차 각부가 차례로 반란하고 서장자 탁발탁발식(拓跋寔君)에의해 살해되었다.
 
탁발십익건(拓跋什翼健)의 시기 [[전진]](前秦)에게 멸망당했다. 십익건의 손자 [[탁발규]](拓跋珪;도무제(道武帝))는 전진이 [[비수의 전투]]에서 대패하여 쇠퇴한 시기를 틈타 386년 [[대나라]] 왕을 칭하고 자립했다. 이후 1년후 국호를 위나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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