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DOC: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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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발표된 4집은 〈DOC와 춤을〉이라는 매우 친근한 가사와 멜로디, 이른바 "관광버스 춤"이라고 알려진 쉬운 안무를 내세운 타이틀곡으로 역시 큰 인기를 끌었으며 다시 한 번 DJ DOC이 국민 댄스 그룹의 위치에 있음을 각인시켜주었다. 반면 앨범의 수록곡인 〈삐걱삐걱〉은 이전에 비해 훨씬 강도가 높아진 사회 비판으로 일부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앨범이 발매되는 과정에서 앨범 판매 계약을 맺었던 회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서 손해 배상 소송이 벌어지기도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161684 "{현장} 가수 DJ DOC 음반제작사 상대 손배訴", 연합뉴스, 1997년 1월 16일]</ref>
 
이후 DJ DOC은 1년마다 새 앨범을 발표했던 앞서와는 달리 베스트 앨범을 제외하면 3년이라는 긴 공백을 가졌다. 불미스럽게도, 공백을 가질 동안이었던 [[1999년]], 이하늘과 김창열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강남구)|신사동]] 한 술집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한 시민에게 폭력을 휘둘러 폭력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외에도 멤버들이 음주운전, 뺑소니 등으로 입건되는 등 수많은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서 각자 몸살을 앓았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416295 "DJ DOC 멤버들 폭력혐의 입건", 연합뉴스, 1999년 7월 17일]</ref> 특히 김창렬의 사고가 잦았으며, 그 외에도 모친상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그는 다음 앨범에 많이 참여하지 못하였다.<ref>[http://news.donga.com/3/all/20080414/8567013/1 :DJ DOC 5집 ‘The Life’ …‘착착 감기는 멜로디…아드레날린 쑥쑥’", 최영균, 동아일보, 2008년 4월 14일]</ref>
 
[[2000년]] 그들의 새 앨범 ''[[The Life... DOC Blues 5%]]''는 신나는 타이틀곡 ''Run to You''가 다시 한 번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포조리〉, ''L.I.E.'', ''Nuclear Lunch the Detect'' 등의 수록곡에 원색적인 욕설, "짭새"라는 표현 등을 통한 경찰에 대한 비난 등, 본인들로써도 물론 당시 가요계에서 유례 없는 강도 높은 가사를 담아 큰 이슈가 되었다. 경찰 측에서는 이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를 고려하다 포기하기도 하였으며,<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01640 "DJ.DOC의 새음반…경찰 속앓이", 조수진, 국민일보, 2000년 5월 17일]</ref> 결국 [[영상물등급위원회|한국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조PD]]의 ''Cho PD in Stardom'', [[김진표 (가수)|김진표]]의 ''JPStyle'' 이후 세번째로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아 청소년에 대한 판매가 금지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003606 "영상물등급위, DJDOC 음반 '청소년 이용불가' 결정", 박은주, 한국일보, 2000년 5월 18일]</ref> 이러한 논란에 DJ DOC 측은 "우리의 일상과 평소 생각을 담았다"며 "(우리는) 가방끈도 짧고 단순하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겠다"고 말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005849 "{대중가요} 욕설가사 논란 DJ DOC "평소생각 담았을 뿐"", 이승헌, 동아일보, 2000년 5월 23일]</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