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성 (169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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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조선 숙종|숙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7년]] [[조선 영조|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홍문관 정자가 되었다. 정자 재직 중 [[1728년]](영조 5) [[이인좌의 난]] 진압 직후 [[조선의 공신|분무]][[원종공신]] 1등(奮武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이듬해에 [[경상도]] [[암행어사]]가 되어 백성들을 잘 보살폈다. 그 후 이조참의·광주부윤·좌부승지·대사성·병조참판·동지의금부사·도승지·경기도관찰사·이조참판·한성부좌윤·부제학·호조참판·평안도관찰사·이조판서·형조판서·예조판서·공조판서·예문관제학·대사헌·좌의정·영의정 등을 지냈다.
 
그는 [[성리학]]에도 밝았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는데, 재직중 [[장헌세자]]를 한마음으로 잘 보살펴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적당들이 간계를 부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유척기]] 등과 함께 장헌세자의 보호자의 한 사람이었다. 저서로 《오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