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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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총리 시절 ===
====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퇴임 ====
[[File:Aankomst premier Shinyong Lho van Zuid Korea op Schiphol rechts premier Lubbers, Bestanddeelnr 933-8659.jpg|thumb|노신영 (1987)]]
[[1987년]] [[1월 14일]] [[6월 항쟁]]으로 촉발되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1월 15일 저녁, 일간지를 읽던 도중 구석에 조그맣게 씌어진 기사를 이상하게 여긴 노신영은 다음날 아침 [[김종호]] 내무부장관 과 정재철 정무장관을 추궁한다. 처음에 김종호는 경찰이 발표한 기사 그대로라며 거짓을 고하였으나 정재철이 자리를 뜨자 곧 고문치사 사건이라며 사실을 말한다. 이에 곧 대책회의를 소집하여 당시 [[노태우]] 대표위원과 [[박영수]] 청와대비서실장, 그리고 [[장세동]] 안기부장, 노신영 4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협의하였고 이 회의에서 노신영은 "전날의 [[닉슨]] 전 미국대통령의 사임이 도청 사실을 은폐하였기에 발생한 일이라며, 늦었지만 이 사실을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후에 또 범인축소 조작사건이 발생하였고 총리인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퇴임을 하지 않을시엔 그 여파가 청와대까지 미칠 수도 있음을 우려하여 [[전두환]]에게 사의를 표명한다. 처음엔 [[전두환]] 역시 임기가 9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냥 유임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결국 그의 사임을 결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