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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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본문|오페라 부파}}
[[파일:Portrait_of_an_Actor,_copy_after_Fetti_-_Robbins-Landon_1991_p60.jpg|섬네일|right|200px|[[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파일:Portrait_of_an_Actor,_copy_after_Fetti_-_Robbins-Landon_1991_p60.jpg|섬네일|right|200px|[[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본문|오페라 세리아}}오페라(opera)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작품"이라는 뜻이며, 같은 뜻의 [[라틴어]] opus에서 왔다. 이 이름이 독창자와 합창자의 노래와 연기와 춤을 무대 위에서 펼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야코포 페리]](Jacopo Peri) [[다프네]](Dafne)가 지금 이해하기로는 오페라의 첫 작품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1597년경에 쓰였으며 [[피렌체]]의 휴머니스트 지식인들이 결성한 Camerata de' Bardi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프네는 고전 [[그리스 극]]을 되살리자는 [[르네상스]]적인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카메라타의 일원들은 그리스 드라마의 "코러스"(chorus:그리스 드라마의 노래 부분) 파트를 맡았고 모든 역할의 대본까지도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다. 오페라는 이러한 상황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현재 다프네는 전해지지 않는다.
 
오페라(opera)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작품"이라는 뜻이며, 같은 뜻의 [[라틴어]] opus에서 왔다. 이 이름이 독창자와 합창자의 노래와 연기와 춤을 무대 위에서 펼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야코포 페리]](Jacopo Peri) [[다프네]](Dafne)가 지금 이해하기로는 오페라의 첫 작품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1597년경에 쓰였으며 [[피렌체]]의 휴머니스트 지식인들이 결성한 Camerata de' Bardi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프네는 고전 [[그리스 극]]을 되살리자는 [[르네상스]]적인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카메라타의 일원들은 그리스 드라마의 "코러스"(chorus:그리스 드라마의 노래 부분) 파트를 맡았고 모든 역할의 대본까지도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다. 오페라는 이러한 상황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현재 다프네는 전해지지 않는다.
페리의 그 후 작품인 1600년경에 작곡된 [[에우리디체 (오페라)|에우리디체]]가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현재 정식으로 상연되는 초기 오페라의 대표적인 작품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오페라)|오르페오]]이며, 이는 1607년 [[만토바]] 궁정에서 작곡했다.<ref>''Oxford Illustrated History of Opera'', Chapter 1; articles on Peri and Monteverdi in ''The Viking Opera Guide''.</ref>
 
== 종류 ==
===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
{{본문|오페라 세리아}}
오페라 부파와 대립되는 말이며, 정가극(正歌劇)이라 번역되기도 한다. 제재를 신화나 영웅의 전설에서 구한 서정적 비극이며, 음악적으로는 [[중창]]이나 [[합창]]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아리아]]에 중점을 두고 그것을 드라마틱한 [[레치타티보]]로 접속해 간다는 방법이 취해진다.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우선 소리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려는 생각을 조성하여 [[벨 칸토]] 창법이라든가 [[다 카포 아리아]]를 낳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주역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 성격을 확립하게 된다. 그 뒤 몇 번의 변천을 거듭하였지만, 오페라 세리아는 마침내 오페라 역사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편 오페라 세리아가 그 독자의 명칭과 양식을 확립한 것은 18세기 [[나폴리 악파|나폴리파]]의 오페라 작곡가들의 노력에 의한다. 그들은 그 때까지의 번잡한 오페라를 정리하여 서정비극의 성격을 철저히 하려고 이 오페라 세리아를 가져왔다.
=== 오페라 부파(opera buffa) ===
{{본문|오페라 부파}}
오페라 세리아와 대립되는 말로서, 희가극 또는 가극이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오페레타]]나 [[오페라 코미크 (양식)|오페라 코미크]]와는 내용을 달리한다. 18세기 [[나폴리 악파|나폴리파]]의 오페라가 서정비극으로서의 오페라를 목적으로 한 데서 이 때까지 내포하고 있던 막간 광대조인 에피소드를 버리고 [[인테르메조]]로 독립하여, 드디어 오페라 부파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성립된 유래에서 이미 명백하듯이 오페라 세리아가 신화나 전설에 제재를 구한 데 반하여, 보다 자유로운 제재로 풍자를 포함하고 있는 일이 많다. 그 때문에 당시 점차로 세력을 잡기 시작한 신흥계급에 환영받아 융성하게 되었다. 음악적으로는 [[중창]]이 많이 쓰였고, 특히 피날레에 놓인 대규모의 앙상블에서는 충실한 음악을 듣게 된다. 작품으로는 아직도 막간 광대조인 성격을 남기고 있는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페르골레시]]의 《마님이 된 하녀》가 있다.
 
=== 그랜드 오페라(grand opera) ===
{{본문|그랜드 오페라}}
넓은 뜻으로 이해하면 비극적인 제재로 된 대규모의 오페라라고 하겠으나, 프랑스어의 ‘grand opera’는 개념으로서는 [[오페라 코미크 (양식)|오페라 코미크]]에 대립되는 것이고 음악적으로는 발레나 합창의 중시, 나아가서는 스펙터클하고 화려한 무대를 특징으로 갖추고 있다. 이는 프랑스의 오페라가 루이 왕조의 비호 아래 육성되었다는 사실 및 프랑스 사람의 기호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는 19세기 전반까지 이탈리아의 [[오페라 세리아]]와 더불어 다소 변화를 보이면서 음악사 상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결국은 시대정신의 진보에 따르지 못하게 되었으며 예컨대 무대효과만을 의도한 것 같은 작품을 낳게 되고 말았다. 이 그랜드 오페라 역사의 최후에 위치하는 작곡가로서 [[마이어베어]]를 들 수 있다. 그리고 그랜드 오페라의 정신과 작법을 잘 소화하여 독자적인 오페라를 확립한 사람이 [[주세페 베르디|베르디]]이다.
=== 악극 ===
{{본문|악극}}
{{듣기
|파일이름=Richard Wagner - Tristan und Isolde - Vorspiel.o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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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 부분.
|유형=[[Ogg]]}}
{{본문|악극}}
독일어 ‘Musikdrama’의 역어이다. 가창 중심의 오페라에 대한 미학적인 비판과 반성으로 발생한 음악극의 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바그너]]에 의하여 창시되었고<ref>그러나 바그너가 자기 작품을 Musikdrama라 부른 일은 한 번도 없으며, 오히려 이 말에 반발까지 느끼고 있었다</ref>, 그의 음악극의 몇 편과 그 양식을 계승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작품을 총칭하여 악극이라고 부르는 관습이 있게 됐다. 그리고 음악적 특징으로는 이 때까지의 오페라에서와 같이 [[아리아]]나 중창으로 일단 음악이 끝나는 것을 피하고, 1막을 통하여 음악이 끊임없이 진행되는 일, [[오케스트라]]의 표현 범위가 확대되어 보다 복잡하고 대규모로 되어 있는 일 등을 들 수 있다. 대본의 사상적 내용이 중시되어, 보다 고도의 것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문학적·연극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를 보다 긴밀하고 보다 고차원에서 결합시키려고 한 것이 악극이다.
 
=== 오페레타(operetta) ===
{{본문|오페레타}}
{{본문|그랜드 오페라}}
이탈리아어 ‘operetta’는 작은 오페라를 뜻하나, 희가극이라고 번역되는 일이 많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자크 오펜바흐|오펜바흐]]가 코믹한 이야기와 알기 쉬운 음악으로 가벼운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사람들에게 환영받은 데서 오페레타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따라서 독자적인 양식은 지니지 않았지만, 오펜바흐의 영향을 받은 [[주페]]가 《보카치오》 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빈 오페레타의 기초를 구축하였다.
=== 오페라 코미크(opera comi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