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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대수 = 18
|취임일 = [[1985년]] [[5월 16일]]
|퇴임일 = [[1987년]] [[5월 25일]]
|대통령 =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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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 [[호 (이름)|호(號)]] 학천(鶴泉)
|종교 = [[개신교]]
|서훈 = 국민훈장 무궁화장
|웹사이트 =
}}
'''노신영'''(盧信永, [[1930년]] [[2월 28일]] ~ )은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국무총리]]를 지낸 [[공무원]]이다. 본관은 [[광주 노씨|광주]](光州). 호(號)는 학천(鶴泉)이다.
 
1953년 제4회 고등고시 합격하여 [[1955년]]부터 [[1982년]] 6월까지 27년간 [[외무부]]에서 근무하였고, 1985년 2월까지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역임하였으며, [[1987년]] 5월까지의 [[국무총리]]직을 끝으로 32년 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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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부장 이임 ====
[[1985년]] [[2월 12일]]에 열린 제1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새로 창단된 신민당이 지역구 50석과 전국구 17석을 차지하여 기존의 민한당과 국민당을 누르고 원내 제 1야당이 되었다. 여당인 민정당이 기대한 만큼 의석을 늘리지 못하자 안기부장인 노신영은 그에 대한 책임으로 전두환에게 사표를 제출하였다. 하지만 전두환은 사표를 거부한채 1년간은 그대로 유임시키겠다며 안기부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한다. 그래도 노신영이 재삼 사의를 표명하자 전두환은 그의 말은 듣지 않으며 "빨리 내려가라"고 지시하였고 어쩔 수 없이 그날 회의를 열어 유임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수일이 지난후 뜻밖에도 노신영은 국무총리에 임명된다.
노신영은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누가 안기부장인지를 국민들이 모르면 모를 수록 사회는 안정되고 국정은 잘된다고 생각하였으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안기부장으로서의 신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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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무총리 시절 ===
====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퇴임 ====
[[File파일:Aankomst premier Shinyong Lho van Zuid Korea op Schiphol rechts premier Lubbers, Bestanddeelnr 933-8659.jpg|thumb섬네일|노신영 (1987)]]
[[1987년]] [[1월 14일]] [[6월 항쟁]]으로 촉발되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1월 15일 저녁, 일간지를 읽던 도중 구석에 조그맣게 씌어진 기사를 이상하게 여긴 노신영은 다음날 아침 [[김종호]] 내무부장관 과 정재철 정무장관을 추궁한다. 처음에 김종호는 경찰이 발표한 기사 그대로라며 거짓을 고하였으나 정재철이 자리를 뜨자 곧 고문치사 사건이라며 사실을 말한다. 이에 곧 대책회의를 소집하여 당시 [[노태우]] 대표위원과 [[박영수]] 청와대비서실장, 그리고 [[장세동]] 안기부장, 노신영 4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협의하였고 이 회의에서 노신영은 "전날의 [[닉슨]] 전 미국대통령의 사임이 도청 사실을 은폐하였기에 발생한 일이라며, 늦었지만 이 사실을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후에 또 범인축소 조작사건이 발생하였고 총리인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퇴임을 하지 않을시엔 그 여파가 청와대까지 미칠 수도 있음을 우려하여 [[전두환]]에게 사의를 표명한다. 처음엔 [[전두환]] 역시 임기가 9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냥 유임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결국 그의 사임을 결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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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훈 ==
* 국민훈장 무궁화장
* 수교훈장 광화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