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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비주류이론을 먼저 읽어보십시오. 네이버 한자 사전은 한이라는 한자의 뜻은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삼한의 한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개요에 있을 가치가 없습니다.
{{한국사}}
[[파일:Hangunhyeon Early CE 3rd Century.png|right|섬네일|200px|3세기 초 삼한의 형세]]
'''삼한'''(三韓)은 [[삼국 시대]] 이전 [[한반도]] 중남부에 자리 잡고 있던 [[연맹왕국]]인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을 통칭하는 말로, [[청동기 시대]]에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성립하였던 [[진국]]에 기원을 둔 것이다. 이후 마한의 백제국(伯濟國)이 [[백제]]로, 변한의 구야국(狗邪國)이 [[가야]]로, 진한의 사로국(斯盧國)이 [[신라]]가 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삼한으로 통칭되는 78개의 ‘국’(國)의 성격을 두고는 여러가지 논의가 진행되어 왔는데, 대개 신지(臣智)를 정점으로 [[읍차]](邑借)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서열화되어 있는 상당한 정치수준으로 추정된다.
한(韓)이란 한(干)ㆍ한(汗)ㆍ한(翰). 우리나라 고조선(古朝鮮) 때에 군장(君長)을 이르던 말이다.<ref>https://hanja.dict.naver.com/hanja?q=%E9%9F%93&cp_code=0&sound_id=0</ref>
 
이후 마한의 백제국(伯濟國)이 [[백제]]로, 변한의 구야국(狗邪國)이 [[가야]]로, 진한의 사로국(斯盧國)이 [[신라]]가 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삼한으로 통칭되는 78개의 ‘국’(國)의 성격을 두고는 여러가지 논의가 진행되어 왔는데, 대개 신지(臣智)를 정점으로 [[읍차]](邑借)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서열화되어 있는 상당한 정치수준으로 추정된다.
 
한편 [[삼국시대]] 후기부터 삼한이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을 의미하는 단어로 치환되어 이해되는 경향이 생겨났으며, 후대로도 계속 이어져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어원이 되었다.
북부 사회보다는 뒤늦게 그 형식이 변모된 남방식 [[고인돌]]이 이 시기에 각처에서 축조되었으며, 또 그러한 사실은 부족 사회의 성립이 그만큼 뒤늦었음과 그 발전 과정이 북부 사회의 그것과 비슷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기원전 2세기경 [[위만]]이 [[고조선]]의 지배권을 장악할 무렵 이 지역에는 [[진국]](辰國)이 있었고, 이들은 중국의 군현세력에 저항하면서 점차 부족연맹 세력을 형성하여 갔다. 그 결과 삼한(三韓)이라고 통칭하는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세 그룹의 부족 사회가 생겼다생겨, 기원후 [[3세기]]경에는 [[대방군]]에 공격을 가하기도 하고 직접 진(晉)과 교섭하기도 했다.
 
일찍이 삼한의 유력한 세력으로 등장했던 목지부족(目支部族)은 기원후 3세기 전반에 이르러 소멸된 것 같다. 목지국은 마한 54개 소국 연맹체의 맹주로 그 위치는 충청남도 직산·성환·아산만 일대 또는 공주, 전라북도 익산 등지에 비정되고 있으나 확실한 위치는 알 수 없다.《삼국지》에는 진·변한 24국 중 12국이 목지국진왕에게 종속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진왕이 진·변한의 일부 지역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북방 [[부여]]와[[고구려]]에서 망명해 온 [[백제]](伯濟)국의 [[예맥족]]이 그 지배권을 대신하였다. 건국 당시 [[온조]]가 영도한 백제는 마한 세력을 결합하여 백제왕국(百濟王國)의 기초를 다졌다. 한편으로 진한의 여러 부족 중에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중심으로 한 사로(斯盧, [[신라]])가 경주평야의 6촌(六村)의 씨족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금속문화를 수용해서 점차 세력을 키워갔다.
[[고조선]] 말기에 이르러 한강 유역으로부터 남부 일대에 걸쳐 진국(辰國)이라는 하나의 큰 부족국가 연맹체가 있었는데, 그 중심지는 지금의 직산(稷山: [[충청남도]] [[천안시]] 북부)과 [[금마면 (익산시)|금마]](金馬: [[전라북도]] [[익산시]] 중부)로 추정하는 견해가 병존한다.
 
당시 북쪽에 위치하였던 [[위만조선]]은 [[우거왕]](右渠王) 때에 이르러 한 무제(漢武帝)의 침략을 받아 붕괴되고(기원전 108년), 그 땅에 한의 군현이 설치됨에 따라 한족(漢族)의 세력과 문화가 크게 흘러 들어왔다. 이와 같은 외래의 정치적 세력과 문화는 한의 군현과 이웃한 고대 한민족(韓民族)의 여러 부족 국가 또는 부락국가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주었는데, 이 무렵에 이르러 남쪽 진국은 지리적 환경에 따라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삼한으로 나뉘었다.
남쪽 진국은 지리적 환경에 따라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삼한으로 나뉘었다.
 
== 정치 ==
* 실학자 [[안정복]], [[정약용]], [[한치윤]] 등은 다양한 문헌 고증을 통하여 현재와 같은 형태로 삼한의 영역을 고증하고 삼한의 역사를 정리한 역사책을 서술하였다.
 
== 기타 ==
* 한(韓)이란의 어원으로 한(干)ㆍ한(汗)ㆍ한(翰). 우리나라등과 고조선(古朝鮮)관련이 때에있으며, 고대의 군장(君長)을 이르던 말이다말이라 보는 견해가 있다.<ref>https://hanja.dict.naver.com/hanja?q=%E9%9F%93&cp_code=0&sound_id=0</ref>
* 일부 비주류 역사학을 주장하는 이들은 삼한의 한(韓)에 대하여 민족적·종교적인 어원이 있다고 주장한다.<ref>김종호, [http://m.mhj21.com/20630 한민족의 뿌리정신 첫 번째 이야기], 《문화저널21》, 2009년 11월 02일</ref><ref>김진명, 《천년의 금서》, 새움, 2009</ref>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