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문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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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가 멸망한 뒤 [[여진문자]](女眞文字)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갈수록 적어 [[명나라]] 중엽에는 이미 차츰차츰 실전되었다. [[누르가치]]가 흥기한 후 [[건주여진]]에서 [[조선]]과 중국에 왕래하던 공문은 공정륙(髸正陸)이라는 중국인이 [[한문]]으로 쓴 것이었으며, 지금껏 여진인들이 군령(軍令)·정령(政令)을 발포할 때에는 [[몽골 문자]]를 사용하였는데 일반 [[여진]]인들은 보아도 알지 못했고,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1599년]], [[건주여진]]의 수러 버이러({{llang|mnc|{{만몽 유니코드|ᠰᡠᡵᡝ<br />ᠪᡝᡳᠯᡝ}}|Sure Beile}})였던 누르가치는 학자(巴克什, {{llang|mnc|{{만몽 유니코드|ᠪᠠᡴ᠋ᠰᡳ}}|Baksi}})인 나라 어르더니(納喇額爾德尼, {{llang|mnc|{{만몽 유니코드|ᠨᠠᡵᠠ<br />ᡝᡵᡩᡝᠨᡳ}}|Nara Erdeni}})와 이사관(扎尔固齐, {{llang|mnc|{{만몽 유니코드|ᠵᠠᡵᡤᡡᠴᡳ}}|Jargūci}})인 이르건 교로 까까이(伊爾根覺羅噶蓋, {{llang|mnc|{{만몽 유니코드|ᡳᡵᡤᡝᠨ<br />ᡤᡳᠣᡵᠣ<br />ᡬᠠᡬᠠᡳ}}|Irgen Gioro G'ag'ai}})로 하여금 [[몽골 문자]]를 그대로 받아들여 만주어를 적은 초기의 만주문자를 무권점 만문(無圈点滿文, {{llang|mnc|{{만몽 유니코드|ᡨᠣᠩᡴᡳ<br />ᡶᡠᡴᠠ<br />ᠠᡴᡡ<br />ᡥᡝᡵᡤᡝᠨ}}|Tongki Fuka Akū Hergen}})이라고 하는데 구만문(舊滿文), 노만문(老滿文)이라고도 부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무권점자의 기록은 [[1610년]]대 후반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당안(檔案)들이다. 초기 당안들 가운데는 [[1607년]]의 일을 적은 당안이 연대상으로는 가장 이른 것이지만, 이 당안이 실제로 필사된 연대는 1620년 전후, 또는 [[천총]] 연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632년]]에 [[숭덕제]]의 명을 받은 박사(Baksi) 다하이(達海, {{llang|mnc|{{만몽 유니코드|ᡩᠠᡥᠠᡳ}}|Dahai}}에 의하여 무권점자는 만주어 적는데 적합한 문자로 개량되었다. 즉 무권점자에 점(點: •)과 권(圈: ○)을 가하여 a와 e,o,와 u,t와 d, 그리고 k와 g와 h를 구별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는데, 이 새 문자를 유권점 만문(有圈點滿文, {{llang|mnc|{{만몽 유니코드|ᡨᠣᠩᡴᡳ<br />ᡶᡠᡴᠠ<br />ᠰᡳᠨᡩᠠᡥᠠ<br />ᡥᡝᡵᡤᡝᠨ}}|Tongki Fuka Sinsaha Hergen}})이라고 하는데 신만문(新滿文)이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