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 (조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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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aoZhiPortrait.jpg|섬네일|200px|조식]]
'''진사왕 조식'''(陳思王 曹植, [[192년]] ~ [[232년]] [[12월 27일]]([[음력 11월 28일]]<ref>[[사마광]], 《[[자치통감]]》 권72, 「위기(魏紀)」4, 명제 6년(232) 11월 28일(경인)</ref>))은 위왕 [[조조후한]] 다섯말기 번째~ 아들로[[위 자는 자건(子建삼국)이다.|조위]]의 최종[[시인]]이자 봉국은[[왕작|제후왕]]으로, 진(陳)나라며[[자 시호는 사(이름)|자]]는 '''진사왕자건'''(陳思王子建)이며 [[패군|패국]] 초현(譙縣) 사람이다. 아버지 [[조조]], 형 [[조비]]와 함께 시작에시에 능통하여 [[삼조]]라 일컬어졌다.
 
== 생애 ==
조비와 조비·[[조창 (조위)|조창]]과의 후계자 권력 다툼에서 조식은 조비에게 패하고 말았다.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조식을 죽이기 위해 일곱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어 읊어보라고 했다. 조식이 시를 짓지 못한다면 죽일 것이라고 하였다. 조식은 "콩을 삶아 콩국 끓이네(煮豆燃豆萁), 콩물을 걸러 즙을 만드네(漉菽以為汁), 콩깍지는 솥 아래 타고 있고(萁在釜下然), 콩은 솥 안에서 눈물짓네(豆在釜中泣).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났건만(本自同根生), 서로 지지기가 어찌 이리 급한가(相煎何太急)"라고 노래한 7보의 시(七步之詩)를 지었고<ref>『세설신어』「문학」</ref> 이에 조비는 깊이 깨달은 바 있어 그를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는 전설이라고 전하지만 상징적이다. 조식은 조비의 경쟁자였기에 항상 봉지가 바뀌었고, 결국 진왕으로서[[진군 (행정 구역)|진군]]왕으로서 생애를 마쳤다.
 
[[파일:Portrait full-length Cao Zhi.jpg|섬네일|200px|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