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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세족'''(權門勢族) 또는 '''권문세가'''(權門勢家)는 [[고려]]시대의 문벌 귀족 가문, 무인 정권기가 몰락하고 중앙 정부의 통제가 약해졌을때 세력을 늘린 신진 세력이다.
 
 
크게 고려 전기부터 있던 문벌귀족 일부와 무인 정권때 성장한 가문이며 무인 정권이 약해짐에 따라 중앙 정부의 통제가 약해져 수많은 농장을 늘리게 된 세력들을 일컫는다
 
 
고려 후기의 지배세력으로서 권문세족의 성립 시기는 대원(對元) 관계가 안정되는 충렬왕대(재위 1275~1308)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구체적으로는 1308년에 충선왕이 복위하여 발표한 교서에서 ‘재상지종(宰相之宗)’이라 하여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가문을 나열한 데서 그 존재가 확인된다.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가문이란 당시 고려의 최고 가문을 뜻하므로 그것은 곧 당시 지배세력의 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상지종’으로 언급된 가문은 경주 김씨(慶州金氏), 언양 김씨(彦陽金氏), 정안 임씨(定安任氏)[<nowiki/>[[장흥 임씨|장흥 임씨(長興任氏)]]], 경원 이씨(慶源李氏), 안산 김씨(安山金氏), 철원 최씨(鐵原崔氏), 해주 최씨(海州崔氏), 공암 허씨(孔巖許氏), 평강 채씨(平康蔡氏), 청주 이씨(淸州李氏), 당성 홍씨(唐城洪氏), 황려 민씨(黃驪閔氏), 횡천 조씨(橫川趙氏), 파평 윤씨(坡平尹氏), 평양 조씨(平壤趙氏) 등 15개이다.
 
최영으로 대표되는 권문 세족은 조선초부터 세력이 약화되었고 조선때부터는 신진사대부로 대체되었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