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대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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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다키가와 사건으로 대학을 떠나 있었던 다키카와 유키토키교수가 대학에 복귀했다. 창립 50주년에 즈음한 [[1947년]]에는 대학명에서 「제국」이 사라지고 교토대학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에는 이학부의 교수인 [[유카와 히데키]]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여 이름을 빛낸 것을 기념하여 유카와 기념관을 설치하였다. 그 이후 유카와 기념관은 [[유카와 이론물리 연구소|유카와 기초물리학 연구소]](YITP)로 개편되었다. 이후 물리학, 화학, 의학분야에서생리의학 분야에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었다.
 
그리고 이토 키요시교수는 이토 보제(補題)로 알려진 확률미분방정식을 확립해 현대 금융공학이론을 진보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였고 블랙숄즈방정식을 도출하는데 중요한 기초를 만들었다. 그 공로로 2006년에 필즈상과 더불어 수학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가우스상을 수상하였다.
 
[[1968년]] 청년의사연합 교토대 지부가 주도한 의대 대학원 입시 거부에 참여하지 않은 수험생이수험생과 청의련 멤버에게멤버가 폭행당한대립한 이른바 「청의련사건」을 빌미로계기로 교양학부가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 학생회가 타격을 받았다. [[도쿄 대학|도쿄대학]]과 같은 입시 중지의 사태는 면했지만, 종전 이후 처음으로 졸업식이 중지되어 그 다음해 9월까지 일부 건물이 폐쇄되기도 하였다.
 
[[1992년]] 종합인간학부가 설치되고 다음 해에는 교양학부가 폐지되는 동시에 대학원과 대학의 이전도 행해져 현재 형태로 대학 조직이 개편되었다. [[1997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2004년]]에는 국립 대학 법인으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