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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오초칠국의 난]] 때, 교위(校尉)로써 종군한 관맹을 따라 전장으로 나아갔다. 관맹은 [[관하(灌河)]]<ref>관영의 아들로, 관영의 영음후 작위를 이어받았다.</ref>의 추천으로 교위가 된 것인데, 자신이 나이가 많았으므로 울적해하였다. 그래서 싸울 때마다 언제나 적의 견고한 곳만을 골라 공격하였고, 마침내 오나라 군대 속에서 전사하였다. 당시의 군법에 따르면 부자가 함께 종군한 경우 한 사람이 전사하면 나머지 한 사람은 유해와 함께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관부는 돌아가지 않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말하였다.
{{인용문2|[[유비 (오왕)|오왕]]이든, 오나라의 장군이든 목을 베어 아버지의 원수를 갚게 해 주십시오.}}
관부는 채비를 하고 결사대 수십 명을 모았다. 그러나 막상 성문을 열고 나가려 하니 앞으로 나서려는 자가 없었다. 결국 두 사람과 관부의 하인 십여 명만이 오나라 장군의 깃발 아래에 이르렀고, 수십 명을 무찔렀지만 더 나아갈 수 없어 돌아왔다. 관부는 하인을 모두 잃었고, 기병 한 명만 살아남았다. 관부는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나아가기를 청하였으나, 장군이 [[태위]]와 상의하니 태위는 강력히 말려 가지 못하게 하였다. 나중에 오나라가 패하니, 관부는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